삼성家 맏이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별세…향년 9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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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면서도 담대한 리더십"…국내 대표 1세대 여성경영인
남자 못지않은 배포와 섬세함
父 이병철 삼성 창업주 빼닮아
독자경영으로 제지중심 그룹 일궈
삼성家 화합 위해 많은 역할
'뮤지엄 산' 개관 등 문화계 공헌
두을재단 설립해 여성 인재 육성
남자 못지않은 배포와 섬세함
父 이병철 삼성 창업주 빼닮아
독자경영으로 제지중심 그룹 일궈
삼성家 화합 위해 많은 역할
'뮤지엄 산' 개관 등 문화계 공헌
두을재단 설립해 여성 인재 육성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이 고문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누나다.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으로 한솔그룹을 일군 국내 대표적인 1세대 여성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남자 못지않은 배포와 섬세함을 갖춰 부친 이병철 회장을 빼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강원 원주시 한솔오크밸리 내 ‘뮤지엄 산’을 만들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두을장학재단을 이끌며 여성 인재 발굴에도 앞장섰다.
삼성에서 독립해 한솔그룹 일궈
이 고문은 1929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 사이에 4남6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대구여중과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1948년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과 결혼해 3남2녀를 뒀다.
이병철 회장은 골프 라운드 때마다 이 고문을 데리고 다니며 인맥을 넓혀주고 경영에 관해 조언해줬다. 이 고문은 1979년 호텔신라 이사를 맡아 서울신라호텔 전관 개보수 작업과 제주신라호텔 건립 등을 이끌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호암자전)에서 이 고문을 가리켜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겼을 큰 재목인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고문은 1983년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고문을 맡으면서 제지 사업을 물려받았다. 1991년 삼성그룹에서 전주제지가 독립하자 그는 사명을 한솔제지로 바꾸고 독자경영에 나섰다.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순우리말을 사용해서 사명을 지을 정도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이 고문은 여성 경영인으로서 섬세한 면모를 지녔으면서도 경영에서는 담대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제지사업 중심이던 한솔이 인쇄용지와 산업용지, 특수지 등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한솔로지스틱스, 한솔테크닉스, 한솔EME, 한솔홈데코 등 계열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솔을 그룹사로 성장시켰다.
위기도 있었다. 한솔그룹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외환위기까지 겹쳐 PCS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제지 공장을 파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이 고문은 삼성가의 맏이로 가족 간 화합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2012년 이병철 회장의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삼성가 형제간 분쟁이 잇따를 때 이 고문은 안타깝다며 “유산상속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고문의 입장 표명은 이건희 회장과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 간 분쟁이 정리되는 분기점이 됐다. 이건희 회장이 1심에서 승소하자 “이번 판결로 집안이 화목해지기를 바란다”며 화해를 권하기도 했다.
문화예술 발전과 여성 인재 발굴에 기여
이 고문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공로가 컸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병철 회장이 도자기, 회화, 조각 등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1995년 한솔문화재단을 설립하고 개인 소장 예술품을 기증했다.
2013년 원주 오크밸리에 개관한 ‘뮤지엄 산’은 이 고문 필생의 역작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고,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4개나 설치됐다. 한국 근대미술의 상징이라고 할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 고문은 2000년 국내 유일의 여성장학재단인 두을장학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모친의 유지를 받들어 삼성가 여성들과 함께 두을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했다. 두을장학재단은 지난 17년간 약 50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유족으로는 자녀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 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동길 한솔그룹 회장, 옥형씨, 자형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영결식과 발인은 2월1일 오전 7시30분이다.
이날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조카인 이재현 CJ 회장과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재환 대표는 “고모님께서 주무시다 새벽 1시에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평소 따뜻한 분이셨으며 저를 자식같이 대해주셨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은 “친한 친구(조동길 회장) 어머니께서 별세해 마음이 아프다”고 조의를 표했다.
김진수/이우상 기자 true@hankyung.com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으로 한솔그룹을 일군 국내 대표적인 1세대 여성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남자 못지않은 배포와 섬세함을 갖춰 부친 이병철 회장을 빼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강원 원주시 한솔오크밸리 내 ‘뮤지엄 산’을 만들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두을장학재단을 이끌며 여성 인재 발굴에도 앞장섰다.
삼성에서 독립해 한솔그룹 일궈
이 고문은 1929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 사이에 4남6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대구여중과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1948년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과 결혼해 3남2녀를 뒀다.
이병철 회장은 골프 라운드 때마다 이 고문을 데리고 다니며 인맥을 넓혀주고 경영에 관해 조언해줬다. 이 고문은 1979년 호텔신라 이사를 맡아 서울신라호텔 전관 개보수 작업과 제주신라호텔 건립 등을 이끌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호암자전)에서 이 고문을 가리켜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겼을 큰 재목인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고문은 1983년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고문을 맡으면서 제지 사업을 물려받았다. 1991년 삼성그룹에서 전주제지가 독립하자 그는 사명을 한솔제지로 바꾸고 독자경영에 나섰다.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순우리말을 사용해서 사명을 지을 정도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이 고문은 여성 경영인으로서 섬세한 면모를 지녔으면서도 경영에서는 담대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제지사업 중심이던 한솔이 인쇄용지와 산업용지, 특수지 등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한솔로지스틱스, 한솔테크닉스, 한솔EME, 한솔홈데코 등 계열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솔을 그룹사로 성장시켰다.
위기도 있었다. 한솔그룹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외환위기까지 겹쳐 PCS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제지 공장을 파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이 고문은 삼성가의 맏이로 가족 간 화합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2012년 이병철 회장의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삼성가 형제간 분쟁이 잇따를 때 이 고문은 안타깝다며 “유산상속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고문의 입장 표명은 이건희 회장과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 간 분쟁이 정리되는 분기점이 됐다. 이건희 회장이 1심에서 승소하자 “이번 판결로 집안이 화목해지기를 바란다”며 화해를 권하기도 했다.
문화예술 발전과 여성 인재 발굴에 기여
이 고문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공로가 컸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병철 회장이 도자기, 회화, 조각 등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1995년 한솔문화재단을 설립하고 개인 소장 예술품을 기증했다.
2013년 원주 오크밸리에 개관한 ‘뮤지엄 산’은 이 고문 필생의 역작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고,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4개나 설치됐다. 한국 근대미술의 상징이라고 할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 고문은 2000년 국내 유일의 여성장학재단인 두을장학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모친의 유지를 받들어 삼성가 여성들과 함께 두을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했다. 두을장학재단은 지난 17년간 약 50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유족으로는 자녀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 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동길 한솔그룹 회장, 옥형씨, 자형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영결식과 발인은 2월1일 오전 7시30분이다.
이날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조카인 이재현 CJ 회장과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재환 대표는 “고모님께서 주무시다 새벽 1시에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평소 따뜻한 분이셨으며 저를 자식같이 대해주셨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은 “친한 친구(조동길 회장) 어머니께서 별세해 마음이 아프다”고 조의를 표했다.
김진수/이우상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