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시민 자각과 이성적 회의가 민주주의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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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크릭 《민주주의를 위한 아주 짧은 안내서》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 교육서.’ 영국의 정치사상가 버나드 크릭(1929~2008)이 2002년 펴낸 《민주주의를 위한 아주 짧은 안내서(Democracy: A Very Short Introduction)》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은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출간한 인문사상 개론서 중 한 권이지만 쉽고 간결하게 쓰여 영미권에서 대중 교양서로 인기가 높다.
크릭이 이 책에서 규정한 민주주의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정치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지금까지 고안해낸 것 중 가장 나은 정치체제이지만 ‘다수의 폭정’으로 귀결될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어 끊임없이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의 각성과 이성적인 회의(懷疑)만이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 정책'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우민(愚民)화를 경계한 것이다. 플라톤의 우려처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원리인 삼권 분립과 법치주의도 언제든지 ‘민의(民意)’로 포장된 다수의 폭압에 흔들릴 수 있다.”
크릭은 자유를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꼽았다. 자유와 평등은 모두 중요한 가치이지만 평등이 자유를 앞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면 종국에는 자유는 물론 평등마저 사라지게 한다. 공산주의는 평등을 내세웠지만 계급적 성분에 따라 국민을 철저히 차별했다.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평등을 자유 못지않게 소중히 여겼지만 절대 가치로 취급하지 않았다. 법적 그리고 정치적 평등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그들이 능력 등 개인 간 ‘차이’를 ‘차별’로 인식했다면 자유시장경제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릭이 꼽은 민주주의 최대 위협 요소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다. “포퓰리즘이 무서운 것은 호소력이 큰 감성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어서다. 포퓰리스트의 가장 큰 무기는 쉬운 언어에 그럴듯한 논리를 곁들여 ‘진실’인 양 포장하는 기술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정당들이 국민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 지지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도 국가를 선도해야 할 정당들이 노조에 표를 구걸한다. 그렇게 되면 소중한 국가 재원을 나눠주기 복지에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면 ‘인민의 소리’는 ‘악마의 소리’가 될 것이다.”
크릭은 이념에 치우친 정책도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진단했다. ‘대중의 견해에 따른다’ ‘대중을 위한다’ 등 시발점이 비슷해서다. 하지만 이념적 정책은 자기 독선에 빠져 결국 대중과 유리(遊離)돼 극단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민중의 뜻에 따라 혁명이나 개혁을 시행한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민중과 심각한 불통(不通)에 빠지곤 한다. ‘우리의 대의(大義)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자이자, 민중을 반대하는 자’로 편 가르기 때문이다. ‘민중을 위한다’는 정책에 고통을 호소하는 민중도 그들에겐 ‘개혁의 적’일 뿐이다.”
크릭은 교육이야말로 난무하는 포퓰리즘과 정부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역설했다. 법치주의 등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의 의식 수준을 고양(高揚)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교가 오히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다양한 개인 역량을 최대한 키워야 할 교육이 ‘평준화’를 내건 ‘교육 민주화’ 슬로건에 밀려 황폐화되고 있어서다.
“학교와 교육이 ‘민주적’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석하게도 ‘민주적 학교’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평등이란 미명 아래 획일화가 난무하는 교육 현장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우리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퓰리즘 현장' 전락한 학교
크릭은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 이기주의와 선정주의 경쟁, 정부의 언론 통제 등으로 인해 언론이 오히려 여론을 왜곡하고 친(親)정부적인 보도를 일삼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엔터테인먼트화된 저널리즘을 목격한다. 공영방송인 BBC마저 때때로 이런 일을 서슴지 않는다. 무지하거나 편견에 찬 하나의 의견을 마치 ‘국민 대표’ 의견인 양 포장한다. 언론이 정부 압박을 받거나 심지어 정부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욱 빈번해진다. 언론마저 통계를 주무르고, 감추는 게 일상인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어렵다.”
크릭은 포퓰리즘에 물든 교육과 정부 통제에 휘둘리기 쉬운 언론 상황을 쉽게 개선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시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신념으로 무장해 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 대신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 회의를 생활화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정치 권력에 대한 예속인지 자유인지, 문명인지 야만인지, 번영인지 빈곤인지는 전적으로 시민의 역량에 달려 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크릭이 이 책에서 규정한 민주주의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정치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지금까지 고안해낸 것 중 가장 나은 정치체제이지만 ‘다수의 폭정’으로 귀결될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어 끊임없이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의 각성과 이성적인 회의(懷疑)만이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 정책'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우민(愚民)화를 경계한 것이다. 플라톤의 우려처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원리인 삼권 분립과 법치주의도 언제든지 ‘민의(民意)’로 포장된 다수의 폭압에 흔들릴 수 있다.”
크릭은 자유를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꼽았다. 자유와 평등은 모두 중요한 가치이지만 평등이 자유를 앞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면 종국에는 자유는 물론 평등마저 사라지게 한다. 공산주의는 평등을 내세웠지만 계급적 성분에 따라 국민을 철저히 차별했다.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평등을 자유 못지않게 소중히 여겼지만 절대 가치로 취급하지 않았다. 법적 그리고 정치적 평등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그들이 능력 등 개인 간 ‘차이’를 ‘차별’로 인식했다면 자유시장경제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릭이 꼽은 민주주의 최대 위협 요소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다. “포퓰리즘이 무서운 것은 호소력이 큰 감성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어서다. 포퓰리스트의 가장 큰 무기는 쉬운 언어에 그럴듯한 논리를 곁들여 ‘진실’인 양 포장하는 기술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정당들이 국민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 지지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도 국가를 선도해야 할 정당들이 노조에 표를 구걸한다. 그렇게 되면 소중한 국가 재원을 나눠주기 복지에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면 ‘인민의 소리’는 ‘악마의 소리’가 될 것이다.”
크릭은 이념에 치우친 정책도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진단했다. ‘대중의 견해에 따른다’ ‘대중을 위한다’ 등 시발점이 비슷해서다. 하지만 이념적 정책은 자기 독선에 빠져 결국 대중과 유리(遊離)돼 극단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민중의 뜻에 따라 혁명이나 개혁을 시행한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민중과 심각한 불통(不通)에 빠지곤 한다. ‘우리의 대의(大義)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자이자, 민중을 반대하는 자’로 편 가르기 때문이다. ‘민중을 위한다’는 정책에 고통을 호소하는 민중도 그들에겐 ‘개혁의 적’일 뿐이다.”
크릭은 교육이야말로 난무하는 포퓰리즘과 정부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역설했다. 법치주의 등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의 의식 수준을 고양(高揚)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교가 오히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다양한 개인 역량을 최대한 키워야 할 교육이 ‘평준화’를 내건 ‘교육 민주화’ 슬로건에 밀려 황폐화되고 있어서다.
“학교와 교육이 ‘민주적’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석하게도 ‘민주적 학교’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평등이란 미명 아래 획일화가 난무하는 교육 현장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우리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퓰리즘 현장' 전락한 학교
크릭은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 이기주의와 선정주의 경쟁, 정부의 언론 통제 등으로 인해 언론이 오히려 여론을 왜곡하고 친(親)정부적인 보도를 일삼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엔터테인먼트화된 저널리즘을 목격한다. 공영방송인 BBC마저 때때로 이런 일을 서슴지 않는다. 무지하거나 편견에 찬 하나의 의견을 마치 ‘국민 대표’ 의견인 양 포장한다. 언론이 정부 압박을 받거나 심지어 정부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욱 빈번해진다. 언론마저 통계를 주무르고, 감추는 게 일상인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어렵다.”
크릭은 포퓰리즘에 물든 교육과 정부 통제에 휘둘리기 쉬운 언론 상황을 쉽게 개선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시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신념으로 무장해 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 대신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 회의를 생활화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정치 권력에 대한 예속인지 자유인지, 문명인지 야만인지, 번영인지 빈곤인지는 전적으로 시민의 역량에 달려 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