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장수는 한발 물러서서 본다…협상에 최고결정권자 나서지 마라
조직의 최고 결정권자나 최고경영자(CEO)가 협상에 직접 나서는 것이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치 않다. 실무진이 풀기 어려운 경우라면 ‘예스’다. 큰 줄기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지치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협상은 질질 끌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CEO가 협상 실무를 직접 담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바로 회사 차원의 전체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실무선에서 다뤄야 할 세부적인 내용이 무시되거나 간과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실무진은 입을 닫게 되고 그들의 협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리더의 감정이다. 본인이 리더로서 ‘뭔가 보여 줘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발동되면 위험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과시하거나 본인의 능력을 과신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CEO가 쩨쩨하게 조그만 것까지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대범함을 보여 주고 싶은 심리도 발동한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리더 개인의 이해관계다. 조직의 리더라면 당연히 조직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 당사자는 타결 결과 위에 개인적인 이익을 얹고 싶은 유혹을 갖게 된다. 본인의 이해타산을 고려하는 것이다. 경영성과를 과시하고 싶은 CEO, 재선을 노리는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유혹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은 것이다.

곧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과 직접 실무 협상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 지난 1월 22일 마이클 모렐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대행이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만나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만 주력하고, 협상 그 자체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일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내년에 재선을 앞두고 정치적 성과가 절실할 것이다. 자칫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눈앞에 어른거리면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협상을 앞둔 조직의 리더는 큰 틀에서 방향을 결정하되 본격적인 협상은 실무진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리스크를 줄이고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기 위해서다. 특히 처음 만나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대와의 협상은 더욱 그렇다. 마치 양파를 까듯 한 꺼풀씩 차근차근 벗겨 나가는 것이 좋다. 협상은 담당 실무자가 가장 잘 안다. 상사는 큰 그림을 그려 주고 뒤로 물러나서 지켜봐야 한다. 유능한 장수는 전장 속에 파묻혀 있기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법이다.

유능한 장수는 한발 물러서서 본다…협상에 최고결정권자 나서지 마라
이때 리더가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협상 대표와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 구축이다. CEO는 협상 대표와 수시로 소통해야 한다. 협상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전략을 짜고 대응 방안을 세우기 위해서는 채널이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시 주택은행의 모 부행장은 협상 시 가장 큰 힘이 된 것이 고(故) 김정태 행장과의 커피 타임이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 9시 김정태 행장실에서 나눈 이야기를 통해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리더는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둘째, 협상 대표에게 협상 결렬권을 주는 것이다. 이는 협상 조건이 조직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깨고 와도 좋다는 의미다.

나머지 뒷감당은 최고 결정권자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