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제대로 안 읽었다"는 주장…1심 "자동삭제 기능은 메시지 확인 후 작동"
재판부 "불법 여부 확인 안하다 보도 나오자 드루킹과 대화방 삭제"
김경수, '댓글기계' 보고받고도 묵인 정황…재판부 심증 굳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김동원 씨의 공범으로 인정돼 법정구속까지 된 데에는 댓글조작 활동의 불법성을 묵인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한 김 지사의 여러 행동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김 지사가 댓글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판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김 지사의 몇몇 행동들을 주요 정황으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우선 드루킹이 메신저를 통해 보낸 '온라인 정보보고' 문서나 댓글 작업 목록 등을 본 이후 김 지사가 취한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김 지사가 받은 온라인 정보보고에는 안철수·이재명 등 정치적 경쟁세력의 댓글 조작 의혹, 이에 대응하는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댓글 작업 현황 등이 담겼다.

재판부는 "상대 세력의 댓글 조직과 조작 상황 등 피고인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내용임에도 드루킹에게 설명을 요구하거나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하지도 않는 등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이는 킹크랩을 활용한 댓글 조작이 이뤄진다는 것을 김 지사가 알고 있었다는 판단을 뒷받침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김 지사는 이런 온라인 정보보고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온라인 정보보고를 받은 '시그널' 메신저의 메시지는 모두 자동삭제 기능으로 삭제됐다"며 "시그널의 자동삭제 기능은 상대가 메시지를 확인해야 작동한다"고 반박했다.

시그널은 보안 기능이 강한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김 지사가 때로 "고맙습니다^^"라는 답변을 한 적도 있는 만큼, 온라인 정보보고를 모두 확인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드루킹이 전달한 댓글 작업 기사 목록을 두고도 재판부는 "댓글 기계 등이 자주 언급된 온라인 정보보고를 전송받았음에도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안 된다'는 등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8년 2월 '댓글 알바 매뉴얼'과 관련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이후 김 지사의 행동도 재판부의 심증을 굳힌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김 지사는 해당 보도 기사를 보좌관에게 주며 '드루킹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하고, 드루킹과의 면담을 연기한 뒤 그와 대화를 나누던 텔레그램 대화방을 삭제했다.

재판부는 "킹크랩을 이용한 범행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댓글 알바 매뉴얼 기사만 보고 곧바로 드루킹에게 확인해보라고 하거나 대화방을 삭제하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며 "기사를 보고 곧바로 그게 드루킹의 범행이라는 점을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킹크랩을 이용한 범행을 전혀 알지 못했다면 단순히 대화방을 삭제하거나 면담을 연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드루킹에게 혹시라도 기계나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 작업을 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꼬집었다.

드루킹이 대화방 삭제에 항의하자 보좌관을 통해 '휴대전화기를 교체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 점도 수상한 정황으로 재판부는 꼽았다.

재판부는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단순히 드루킹이 '선플 운동'을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사람이 취한 태도로는 납득이 어렵다"며 "드루킹의 범행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사정"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