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록보다 위대한 기억, 왜곡된 역사를 심판대에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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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전쟁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300쪽│1만8000원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300쪽│1만8000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이 히틀러의 첫 번째 희생자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실상은 달랐다. 당시 오스트리아 인구 700만 가운데 55만 명이 나치 당원이었다. 오스트리아인은 제3제국 전체 인구의 8%에 불과했지만 나치 친위대 가운데 이들의 비율은 14%에 달했다. 집단학살을 집행한 살인특무부대 구성원의 40%가 오스트리아인이었다. 베를린 교향악단 단원 110명 가운데 8명이 나치 당원이었던 데 비해 117명의 빈 교향악단 단원 나치 당원은 45명이나 됐다. 전범 히틀러와 아이히만을 배출한 나라다웠다. 그런데도 오스트리아는 인구 상당수가 가해자였던 사실을 숨긴 채 피해자로 탈바꿈했다.
1941년 7월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 북동부 인구 3000명가량의 소도시 예드바브네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한 유대인 1600여 명이 학살됐다. 놀랍게도 가해자는 독일인이 아니라 오랜 이웃인 폴란드인이었다. 유대계 미국인 역사학자 얀 그로스가 쓴 《이웃들》이라는 책을 통해 이 충격적인 사건이 밝혀지자 상당수 폴란드인은 “유대인의 폴란드 때리기며, 폴란드인은 타고난 반유대주의자라는 편견을 증폭하려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발했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쓴 《기억 전쟁》에 실린 이 두 가지 사례는 상식의 허를 찌르며 즉각 뜨거운 논란의 현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가해자와 공범자, 방관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고 누가 더 큰 희생자인지를 놓고 희생자끼리, 희생자와 가해자가 경쟁하는 낯뜨거운 현장이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비극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놓고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활동가’ ‘기억연구자’를 자임하는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기억 연구’의 중요성이다. 실증적 역사방법론이 문서와 기록을 근거로 산 자가 죽은 자를 심문하고 재단하는 데 비해 기억 연구는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는 노력이다. 문서와 기록 중심의 공식기억보다 개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 있는 풀뿌리 기억, 즉 증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래야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기억문화와 실증의 이름으로 진짜와 가짜, 가해자와 희생자를 나누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 증언에는 약점이 있다. 기록은 분명한 반면 기억은 흐리고 같은 일을 겪고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이런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실증주의를 앞세운 가해자의 역사 부정이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실행했다면 히틀러의 명령이 담긴 문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문서는 한 통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생존자들의 증언이 꾸며낸 얘기라고 주장한다. 일본군이 조선 여성을 연행했다면 명령서가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하는데 한 통도 발견된 게 없다며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성폭력이라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본 측 주장과 판박이다. 증언자의 불확실한 기억, 사소한 팩트(fact)의 차이를 빌미로 가짜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단골 수법이다.
그러나 증언은 기록이 담지 못한 생생함이 있다. 저자가 숫자로 가득한 사료보다 개인의 생생한 증언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을 재판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세계에 중계방송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역사에서 숫자는 ‘누가 희생자인가’란 물음의 답을 구할 때 하나의 근거가 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우리 민족이 더 많이 죽었기에 가해한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해 역사적 우위에 있다는 시각은 수치 중심적 사관의 결과다. 그러나 역사는 도식적 견해로 재단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피해자, 일본인과 독일인은 가해자라는 단순 논리는 그 안의 개인을 매몰하고 억울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저자는 “죄의 유무는 그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 인간 개인이 저지른 일의 내용과 결과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기억 연구와 재현의 국제적 연대에 주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쪽 소도시 글렌데일에 2013년 해외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것은 주민의 40%가 아르메니아인이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인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집단학살 당한 ‘기억’이 있어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누구보다 깊이 공감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곤혹스러운 과거 앞에 당당한 사람보다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사회의 기억 문화가 더 건강하다”며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성찰하고 끊임없이 재고해야 할 ‘기억’의 책임이 전후 세대에 있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1941년 7월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 북동부 인구 3000명가량의 소도시 예드바브네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한 유대인 1600여 명이 학살됐다. 놀랍게도 가해자는 독일인이 아니라 오랜 이웃인 폴란드인이었다. 유대계 미국인 역사학자 얀 그로스가 쓴 《이웃들》이라는 책을 통해 이 충격적인 사건이 밝혀지자 상당수 폴란드인은 “유대인의 폴란드 때리기며, 폴란드인은 타고난 반유대주의자라는 편견을 증폭하려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발했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쓴 《기억 전쟁》에 실린 이 두 가지 사례는 상식의 허를 찌르며 즉각 뜨거운 논란의 현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가해자와 공범자, 방관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고 누가 더 큰 희생자인지를 놓고 희생자끼리, 희생자와 가해자가 경쟁하는 낯뜨거운 현장이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비극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놓고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활동가’ ‘기억연구자’를 자임하는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기억 연구’의 중요성이다. 실증적 역사방법론이 문서와 기록을 근거로 산 자가 죽은 자를 심문하고 재단하는 데 비해 기억 연구는 산 자가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는 노력이다. 문서와 기록 중심의 공식기억보다 개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에 있는 풀뿌리 기억, 즉 증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래야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기억문화와 실증의 이름으로 진짜와 가짜, 가해자와 희생자를 나누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지만 증언에는 약점이 있다. 기록은 분명한 반면 기억은 흐리고 같은 일을 겪고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이런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실증주의를 앞세운 가해자의 역사 부정이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실행했다면 히틀러의 명령이 담긴 문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문서는 한 통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생존자들의 증언이 꾸며낸 얘기라고 주장한다. 일본군이 조선 여성을 연행했다면 명령서가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하는데 한 통도 발견된 게 없다며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성폭력이라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본 측 주장과 판박이다. 증언자의 불확실한 기억, 사소한 팩트(fact)의 차이를 빌미로 가짜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단골 수법이다.
그러나 증언은 기록이 담지 못한 생생함이 있다. 저자가 숫자로 가득한 사료보다 개인의 생생한 증언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을 재판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세계에 중계방송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역사에서 숫자는 ‘누가 희생자인가’란 물음의 답을 구할 때 하나의 근거가 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우리 민족이 더 많이 죽었기에 가해한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해 역사적 우위에 있다는 시각은 수치 중심적 사관의 결과다. 그러나 역사는 도식적 견해로 재단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피해자, 일본인과 독일인은 가해자라는 단순 논리는 그 안의 개인을 매몰하고 억울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저자는 “죄의 유무는 그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 인간 개인이 저지른 일의 내용과 결과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기억 연구와 재현의 국제적 연대에 주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쪽 소도시 글렌데일에 2013년 해외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것은 주민의 40%가 아르메니아인이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인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집단학살 당한 ‘기억’이 있어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누구보다 깊이 공감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곤혹스러운 과거 앞에 당당한 사람보다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사회의 기억 문화가 더 건강하다”며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성찰하고 끊임없이 재고해야 할 ‘기억’의 책임이 전후 세대에 있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