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결국 기업친화 정책밖에 없다
요즘 우리 국민은 모두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국민 모두 함께 경험한 경제 성장은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형태로든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성장의 엔진이 꺼진 국가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힘만 드는 세상이 된다.

경제 성장이란 엔진의 뚜껑을 열어보면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주력 산업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자동차, 자동차 부품, 조선, 일반기계, 철강, 석유화학, 정유, 휴대폰,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10개의 주요 제조업을 꼽을 수 있다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5년간의 통계자료를 보면 이 주력 산업의 부가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최근 5년 사이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업종별로는 반도체를 제외한 9개 주력 산업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특히 휴대폰, 자동차, 디스플레이 부문의 부가가치 성장이 역주행하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부가가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두 가지 부분은 기업의 영업이익과 근로자의 소득이다. 최근 5년간 주력 산업에서 창출된 기업 영업이익과 근로자 소득의 합이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것은 기업에는 기업을 하려는 의지가 계속 줄어들고 근로자들도 노동의 보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 된다. 기업이든 근로자든 호주머니가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과 근로자 중 누가 더 많이 가져갔는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주력 산업 위축 현상을 국내외 수요 축소와 연계해 국내 경기 하락 국면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총수요 부양책을 세우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주력 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은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동차로 말한다면 차를 탈 사람이 부족해서 차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엔진이 고장나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은 이미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여러 통계에서 확인된다. 노동생산성을 보자. 이는 부가가치를 임금근로자 수로 나눈 값이다. 2002~2007년 4.1%, 2007~2012년에 3.1%로 추가적인 부가가치가 창출됐으나, 2012~2017년에는 -0.9%로 역성장했다. 근로자 한 명을 고용해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같은 기간 주력 산업에 고용되는 임금근로자 증가율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 주력 산업을 되살리려면 산업 내 기업의 활력을 살리는 수밖에 없다. 주력 산업의 평균적인 부가가치가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안의 모든 기업이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 내에서 혁신에 성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은 이를 신기술과 경영 혁신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차종인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배터리와 파워트레인 등 미래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 규모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산업에서도 차세대 주요 기술인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폴더블 디스플레이 등 미래 핵심부품 생산 기업이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재투자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한국 주력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력 산업 내 혁신 기업이 성장해갈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철폐할 필요가 있다. 또 이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을 조성하는 기업친화적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특정 산업을 선정해서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재정을 쏟아부으며 산업을 전체적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산업 정책은 과거 개발연대에나 가능한 방식이다. 그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야말로 과거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성장과 혁신 그리고 부가가치 창출은 결국 기업들이 하는 것이지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