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내 인생의 귀인
해마다 이맘때면 자주 연락하지는 못해도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연말연시나 명절 인사를 통해 끊어질 듯한 인연이 다시 닿기도 하고, 이어가고 싶은 인연은 이런 시기를 계기로 관계 회복을 노려보기도 한다.

필자는 1970년 대전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응시했으나 재수를 해야 했다. 많은 고민 끝에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서울정일학원에서 공부하려고 모교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홍철화 원장님을 뵙게 됐다. 그해 2월부터 정일학원 2기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홍 원장님은 몸소 실천하는 젊은 경영인이자 다정다감한 참교육자였다. 정일학원에서 1년을 갈고닦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 원장님이 대학 입학금을 주고 일자리(가정교사)도 마련해줬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임관해 전역할 때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일학원 초창기 출신으로 구성된 30여 명이 원장님을 중심으로 정우회라는 친목 모임을 결성해 수시로 우정을 다지고 있다. 2012년 1월 원장님께서 작고했을 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제자가 장지까지 운구했다. 청년 시절부터 꿈과 희망을 심어준 홍철화 원장님은 내 인생에 첫 번째 귀인(貴人)이었다.

필자는 공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결혼했다. 결혼식 주례를 서 준 분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고 2012년 입적한 지관스님이었다. 스님은 주례사에서 인생의 세 가지 큰 인연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는 태어날 때 부모와의 인연, 둘째는 배우자와의 인연, 마지막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죽음과의 인연이다. 스님께서 “결혼하는 두 사람은 앞으로 종교를 갖고 안 갖고는 자유지만 너무 한 종교에 집착하지는 말라”고 당부한 말씀을 명심하며 살고 있다. 스님께서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계실 때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지관스님은 내 인생의 두 번째 귀인이었다.

세 번째 귀인은 장모님인 홍순경 여사(2001년 작고)다. 그분은 지혜로우며 혜안이 있어서 3남5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내가 결혼할 때나 유학 가서 공부할 때나 큰 힘이 돼 줬다. 한국에 귀국해서도 앞으로의 인생을 잘 예견하고 조심하도록 인도해준 분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인연이 있을 것이다.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 잘 가꿔가면서 선업을 쌓아가면 다시 태어날 때 좋은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한다. 어두울 때 등불이 돼 준 세 분의 귀인께 감사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귀인이 있다면 지금 바로 마음을 움직여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