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작년 폭염 때 내놨던 대규모 전기요금 감면 비용을 전액 한국전력에 떠넘겼다는 한경 보도(2월1일자 A14면)다. 한전이 정부 대신 떠안은 전기요금 감면액은 약 3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작년 7, 8월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여론이 악화되자 가정용에 한해 누진제 상한선을 높이는 방식으로 깎아준 금액이다.

정부는 “2019년 예산안에 한전 누진제 완화 손실 보전액을 반영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모두 삭감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경위가 어찌 됐던 정부가 손실보전 약속을 어기고, 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 중인 한전에 정책 변화(전기료 감면)에 따른 비용까지 부담시켰기 때문이다.

한전은 탈원전 이전만 해도 초우량 공기업이었다. 원전공사 비리수사로 일시적으로 원전 가동을 줄였던 2011~2012년 등을 제외하고는 매년 3조~5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한 지난해 대규모 적자(추정)를 냈다. 원전 가동률을 줄이고 이보다 발전 단가가 2~3배 비싼 LNG, 석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인 탓이다. 여기에다 정부의 누진제 완화에 따른 ‘폭염 청구서’까지 부담하면 한전의 손실액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한전 부실화가 ‘국내 문제’로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전의 경영악화는 탈원전 등 정부 정책에 기인하는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인 한전의 외국인 주주들이 이를 빌미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헤지펀드들이 우리 정부의 관치(官治)와 불투명한 업무 관행 등을 문제삼아 ISD를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터다.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으로 ISD는 모두 7건으로, 소송 규모가 약 7조원에 이른다. 작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듯이 한국은 최근 3년 사이 ‘ISD 주요 피소국’이다. 이념에 사로잡힌 탈원전과 어설픈 전력비용 정책이 곳곳에서 심각한 뒤탈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