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이던 김지은 씨를 상대로 2017년 8월 29일부터 지난해 2월 25일까지 10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과 강제추행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안 전 지사의 구체적 혐의들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김지은 씨의 사건 전후 행동과, 그의 진술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꼽았다.
그러나 2심은 정반대로 김지은 씨 진술이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판단에 따라 김씨가 주장한 피해 역시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일례로 첫 번째 성폭행이 벌어진 2017년 7월 러시아 호텔에서의 사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내용도 당시 오간 말과 행동 등 상황과 당시의 감정 등을 매우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김씨로부터 피해 호소를 들은 증인의 진술도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김씨의 진술과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씨의 지위 등으로 미뤄 7개월이 지나서야 폭로하게 된 사정도 납득할 만하고, 안 전 지사를 무고할 동기도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는 1심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에 가깝다.
이 사건을 두고 1심은 김씨가 다음날 안 전 지사의 식당을 찾고 저녁에는 와인바에 가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며 김씨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했다.
또 김씨가 피해를 호소한 증인의 진술에도 차이가 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변호인의 이런 주장을 "정형화한 피해자라는 편협한 관점에 기반했다"며 배척하고, 오히려 안 전 지사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성폭행 사건에 앞서 러시아에서 일어난 최초의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판단에서도 김씨 주장의 신빙성이 고스란히 인정됐다.
재판부는 여기서도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피해자가 불명확한 증언을 하고 있다"고 한 1심 판단과 배치된다.
1심은 김씨로부터 피해 호소를 들은 증인의 진술에 부정확하거나 바뀐 부분이 있는 것도 이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근거로 댔지만, 2심 재판부는 "전체 진술에 비춰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였다.
아울러 첫 성폭행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장소에서 강제추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피해자의 진술을 납득할 수 없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배척했다.
재판부는 "사건 상황을 종합해 보면 기습적 추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두 사건 이후로 벌어진 여러 차례의 간음·추행 혐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구체적이고, 경험하지 않으면 진술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신빙성이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이어갔다.
일부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 자체로 신빙성을 배척할 사정이라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후 사정이나 김씨의 행동 등을 문제 삼으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안 전 지사 측의 변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구체적인 시기나 장소가 특정되지 않은 1차례의 강제추행 혐의를 제외하고 9개의 혐의는 모두 김씨 주장을 토대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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