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버닝'은 한 번보다 두 번, 세 번보면 더 재밌는 영화…그게 '버닝'의 문제"
“‘버닝’(Burning)은 한 번보다 두 번보면 더 재밌고, 두 번보다는 세 번보면 더 재밌는 영화라고 한다. 그게 ‘버닝’의 문제다.”

이창동 감독은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이창동 작품전’에서 상영을 앞두고 관객들에게 “버닝은 여러 겹의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며 유쾌한 인삿말을 건넸다.

MoMA는 이날부터 9일까지 이 감독의 영화 ‘버닝’ , ‘밀양’ ‘시’ ‘박하사탕’ 등을 연속 상영한다. 한국 감독으로는 김기덕 감독에 이어 두번째다. MoMA의 모린 매스터스 영화 큐레이터는 “‘시’등 이 감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며 “벌써 한 회 400장의 표가 모두 매진됐다”고 설명했다.

버닝은 2019년 아카데미상(오스카)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로 뽑혔지만, 지난달 23일 발표된 최종후보에선 아쉽게 탈락했다.

이 감독은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기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실제로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국영화상 예비후보가 10편이나 되고 아카데미상 위원들의 평가 시간이 짧다보니 소니픽처스, 넷플릭스 등 대형 배급사 작품의 영향력이 미치는 작품이 주로 뽑힌다는 얘기다.

그는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가 이제 문턱까지는 왔는데 그 메커니즘을 넘으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다음번에는 훨씬 수월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버닝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고, 프랑스 대표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2018년 영화 ‘톱 10’에 올랐다. 뉴욕타임스(NYT)는 비평가가 선정하는 2018년 최고의 영화 10편에도 뽑혔다.

아래는 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버닝’은 ‘시’ 이후에 8년만에 처음 찍은 영화다. 어떻게 찍게됐는가.

“일본 NHK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영화할 수 있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저와 맞지 않는거 같아 사양했는데, ‘프로듀싱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다른 젊은 감독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겠다고 했다. 한데 일본은 일이 진행이 좀 느리고, 우리 젊은 감독들은 마냥 기다리기 어려워 내가 그냥 하게됐다. 그동안 고민했던 것과 맞을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영화의 메시지는 여러가지인데.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간단히 말하면 메시지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질문을 늘 해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인생에 대해. 이 영화는 질문이 좀 복잡해요. 어려운 여러 겹의 질문이랄까.”

해외 영화계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잘 모르겠지만, 요즘 영화들이 쉽고 단순해지고 있지 않은가. 어찌됐던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에 역행하는 영화하고 볼 수 있다. 여러 겹의 질문이랄까, 여러 겹의 이야기를 가진 영화다. 다른 영화들에게서 보기 힘든 새로운 경험이랄까.”

아카데미상 후보에서 아쉽게 떨어졌는데.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기대할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실제로는 전혀 다른 매커니즘이 있었다. 한국영화는 지금 그 문턱까지는 왔는데 그 메카니즘을 넘으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떤 메카니즘을 말하는가. 상업주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외국어영화상을 투표하려면 처음에 10편 이상을 봐야하고 그래서 숏리스트 작품을 뽑는다. 실제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외국영화 12편을 다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투표기간 동안에 볼 수 있는 사람은 배급사가 독려할 수 있는 그런 회원들에 한정돼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그런 힘을 가진 매그놀리아나 넷플릭스, 소니 같은 배급사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경험도 없고.”

그런 구조를 감안하면 문턱까지 간 것만으로도 성과겠다.

“네. 다음번에는 훨씬 수월할 수 있겠다고 본다.”

버닝의 타깃층이 젊은층인가. 빈부격차를 다뤘다.

“빈부격차는 어디에나 있는 문제인데, 젊은이의 문제다. 우리 사는 세상의 문제가 젊은이의 문제이고 젊은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훨씬 직접적으로 절박하니까 젊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작품성만큼 흥행이 성공하지는 못했다.

“관객들이 그렇게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닌거 같다. 서사라든지,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든지 하나로 해석하기 어려운 게 있다. 그 모호함에 대한 영화다. 그 모호함이 싫은 거다. 지금은 관객들이 그런 걸 잊어버린지 오래된거 같다. 단순한 것을 좋아하고 질문을 싫어한다.”

미국에서 이 감독을 다룬 책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책은 아니다. 어떤 소설가가 있는데, 제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한다. 영화나 제 개인 모두.”

MoMA에서 회고전을 갖게됐는데 소감은?

“대단히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현대 예술의 메카라고 볼수 있는 곳이니까.”

넷플릭스에서도 작품 제안을 받았나.

“딱 넥플릭스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제안은 있다. 미국에서 영화를 찍자는 구체적인 제안도 있다. 잘 모르겠다. 제가 한국 사람의 것도 잘 모르는데 미국에서 할 수 있을지.”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