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자영업 위기가 대기업 때문이라고?
“국내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거든요. 그 이익 낸 게 지금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안 내려온단 말이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영업 위기의 원인으로 난데없이 ‘대기업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홍 장관은 “소득주도성장은 중소기업,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지원해 서민 경제를 살리고 한국 경제를 튼튼하게 성장하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그것을 비판하시는 분들은 옛날 대기업 중심 경제로 돌아가자는 얘기 같아서 굉장히 안타깝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은 이 정부에서 홍 장관 혼자만 하는 게 아니다. 인태연 청와대 자영업 비서관은 기자회견과 기고문 등에서 “자영업자 위기의 근본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대형 유통 재벌의 욕망과 통제되지 않는 임대료”라며 “최저임금 1만원 목표를 조속히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2019 자영업 리포트’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영업 위기의 원인으로 대기업이나 재벌을 지목하는 현장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대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받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소상공인연합회를 통해 소상공인 4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해 16.4%에 이어 올해 10.9% 인상된 최저임금이 소상공인업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견이 92.6%로 대부분이었다.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관해서는 ‘동결해달라’는 응답자가 79.3%에 달했고, 일괄적인 인상이 아니라 ‘업종 및 지역별 차등화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60.4%로 집계됐다. 인천 부평에서 만난 한 옷가게 사장은 “주휴수당을 포함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사실상 1만원대라지만, 장사가 잘된다면야 시급 2만원도 줄 수 있다”며 “경기 침체나 업종별 상황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작년보다 10.9%를 더 주라는 게 과연 합당한 정책이냐”고 되물었다.

인 비서관이 ‘통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임대료도 자영업 침체에 따라 조정되는 움직임이었다. 서울 명동의 공인중개사무소들은 “명동 상가 임대료가 최근 1~2년 새 전체적으로 20%가량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태원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임대료가 2년 만에 절반 가까이 깎인 경리단길 상가도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그동안 줄줄이 내놓은 자영업자 대책은 별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의 한 횟집 사장은 “정부가 뭘 내놨는지를 모를 정도로 도움되는 정책이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 정책이 오히려 대기업 이익이 자영업자에게 분배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종로의 한 보쌈집 사장은 “지난해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인근 대기업 직원들의 회식이 줄어든 것이 매출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인들이 설 연휴 동안 듣고 온 자영업 민심도 심상치 않았다. 광주 서구갑의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걱정이 컸다”고 했다. 전남 여수을의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도 “작년 추석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상인들이 어려운 것을 확연히 체감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일선 부처에서 자영업 대책을 짜는 정부 인사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자영업자들은 더욱 참혹한 명절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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