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지난 1일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에 대해 최소한의 경영참여 주주권(정관변경 주주제안)을 행사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진그룹은 일단 한시름 놓은 분위기다. 하지만 기업들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국민연금이 비공개대화, 중점관리기업 명단 공개 등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은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사해임,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 경영참여 주주권도 자본시장법을 정비한 뒤 본격적으로 행사할 것으로 보여 국민연금의 민간 기업 경영 관여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경영개입' 시동 건 국민연금…다음 타깃 어딘가
비경영참여 주주권은 ‘최대한’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1일 회의에서 한진칼과 대한항공 중 한진칼에 대해서만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형을 확정받은 사람은 3년간 이사를 맡을 수 없다’는 내용의 정관변경안을 주주제안을 통해 다음달 주주총회에 올리기로 한 것.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즉각 해임하는 안건은 올리지 않기로 한 데다 특별결의사항(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인 정관변경안이 주총을 통과할 가능성이 희박해 상징적인 조치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는 ‘최소한’으로 하되 비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는 ‘최대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원칙)를 도입하면서 마련한 로드맵에 따라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까지 회사가 올린 안건에 대해 주총에서 ‘찬반’ 의결권을 행사하는 소극적 주주권만 행사해왔다. ‘포커스리스트’로 불리는 중점관리기업도 ‘짠물 배당’ 기업만 선정했다. 앞으로는 경영진의 사익편취와 과도한 임원 보수 등도 국민연금의 중점관리 사안이 된다. 문제가 되는 기업에 대해선 비공개대화를 시도한 뒤 개선되지 않으면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한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기업은 명단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떨고 있는 기업

국민연금이 지난달 공개한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보유 지분이 5% 이상이거나 운용자산 중 비중 1% 이상인 투자기업 가운데 △횡령·배임·부당지원행위(일감몰아주기)·경영진 사익편취 등 법령 위반 우려 △과도한 임원 보수 △낮은 배당성향 △5년 내 2회 이상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기업을 추려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배당성향이 낮고 국민연금이 잇따라 반대표를 행사한 곳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이 지분 8.29%를 보유한 화승인더스트리는 유력한 중점관리기업 후보다. 이 회사의 2016년과 2017년 배당성향은 3.09%, 3.77%에 불과했다. 최근 3년 동안 연 주총에서 사내·외 이사 선임과 정관 변경 안건에 국민연금이 매년 반대표를 냈다. 평화정공(국민연금 보유 지분 6.12%) 송원산업(6.01%)도 국민연금이 지난 3년 동안 주총에서 감사선임과 이사보수한도 및 재무제표 승인, 정관변경 안건에 반대했다. 저배당 기업 가운데 최근 3년간 국민연금이 2회 이상 반대표를 던진 곳은 현대그린푸드(12.82%) 현대리바트(12.31%) 사조산업(10.53%) 등이다.

본격적 경영참여 시간문제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해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건 10%룰 때문이다. 특정 기업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주주가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꿀 경우 6개월 이내 단기 매매차익을 회사 측에 반환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식을 11.56% 보유하고 있다.

5% 이상 보유한 투자자가 투자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면 1%의 지분 변동만 있어도 5일 안에 공시해야 하는 ‘5%룰’도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큰 걸림돌이다. 국민연금은 이를 감수하고 한진칼(지분율 7.34%)에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지만 이른 시일 안에 비슷한 사례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매매 내역을 실시간 공시하는 경우 추종매매가 생겨나 운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위원회는 국민연금이 5%룰을 적용받지 않도록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연금이 10%룰 적용에서도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법개정을 추진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대해 상징적 주주권만 행사하기로 한 건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제도를 정비하고 나면 민간 기업에 대한 경영 관여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김익환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