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업계에서 닛산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는 ‘곤의 선물’로 불린다. 르노삼성자동차가 로그 수탁생산 계약을 따내는 데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얼라이언스 회장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로그가 르노삼성에 ‘선물’ 같은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기도 하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2014년부터 대미(對美) 수출용 로그 물량을 수탁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량 21만5809대 가운데 49.7%인 10만7262대가 로그였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로그 수탁생산 계약은 오는 9월 끝난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업계는 르노삼성이 무난히 로그 후속 물량을 따낼 것으로 관측해왔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터져나왔다. 노동조합의 장기 파업이다. 르노삼성은 국내 완성차 5사 가운데 유일하게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28차례 파업했다. 로스 모저스 프랑스 르노그룹 제조총괄 부회장이 “노조가 파업을 계속하면 로그 후속 물량 논의를 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이유다.
[단독] 일본 공장보다 임금 20% 높은데…기본급 더 달라는 르노삼성 노조
잇단 파업으로 5000대 생산 차질

르노삼성 노조는 한국 완성차업계에서 ‘모범생’으로 통했다. 툭하면 파업하는 다른 완성차업체 노조와 달리 합리적인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2015~2017년 3년 연속 파업하지 않고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르노삼성 노조가 달라진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노조는 기본급을 대폭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사측은 거부했다. 지난해 12월 박종규 새 노조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노조는 더욱 강경해졌다. 박 위원장은 2011년 르노삼성 직원 50여 명을 모아 기존 노조(상급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기업 노조)와 별개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르노삼성 지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취임 직후 르노삼성 노조를 민주노총에 가입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달 7일까지 28차례 부분파업을 했다. 누적 파업시간은 104시간이다. 5000대가량의 생산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 한 달 생산량(2만여 대)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올 1월부터는 파업 시간도 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간조와 야간조가 2시간씩 부분파업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지난달부터는 4시간씩 파업하고 있다.

이 회사 노사 임단협의 핵심 쟁점은 기본급 인상 여부다. 르노삼성은 기본급을 2016년 3만1200원, 2017년 6만2400원 인상했다. 노조는 그동안 좋은 실적을 거둔 만큼 기본급을 10만667원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자기계발비를 2만133원 인상하고, 특별격려금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르노 본사와 로그 후속 물량 배정 협상을 벌여야 하는 시점이어서 기본급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대신 기본급 유지 보상금, 생산성 격려금 지급 등으로 보상하겠다고 제안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2014년 부산공장과 닛산 일본 규슈공장이 로그 물량 배정을 놓고 경합을 벌일 때만 해도 부산공장의 평균 인건비가 압도적으로 낮았지만 최근 조사에서 부산공장의 평균 인건비가 20%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본급까지 오르면 로그 후속 물량을 따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규모 인력감축 사태 오나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모저스 부회장의 공개 경고가 심상찮다고 우려하고 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이미 로그 후속 물량 배정 후보군에서 빠진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르노삼성에 우호적이던 곤 전 회장(소득 축소 신고 등의 혐의로 일본에 구금 중)이 낙마했기 때문이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르노삼성 매출은 반토막이 난다. 지난해 부산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의 절반가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을 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르노삼성은 수출용 로그 생산 물량을 위탁받기 직전인 2011~2012년 내수 부진으로 적자를 냈다.

일감이 급감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에선 2300명 수준인 부산공장 인력 중 절반가량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