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강사는 없었다
운동권 중심이었던 1세대에서 유학파로 세대교체 진행 중
유튜브 진출 움직임도 활발
입시 추억 담은 영상 올리고 SNS 인증샷 이벤트 열기도
아이돌처럼 카메라테스트 필수
"입담이나 외모는 부차적…성적 못 올리면 외면 받아"
인터넷강의(인강)업계에서 잘나가는 강사라면 한 번씩 거쳐가는 영광스러운(?) 별명이다. 강사 한 명이 소년·소녀 가장처럼 집안(업체)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다. 이 별명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첫째, 1타 강사(수강생·매출 1위)들의 나이가 젊어졌다는 것이다. 메가스터디 1위 탈환의 공신인 현우진은 1988년생이다. 둘째, 1타 강사에 대한 학원의 의존도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1타 강사는 실제 회사의 연매출을 좌지우지하는 ‘1인 중소기업’이다. 더구나 주 고객층인 10대 학생 사이에서는 스승의 경지를 넘어 연예인급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1타 강사는 세대교체 중
서울 대치동 유명 강사의 강의를 전국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콘셉트의 인강은 2000년 메가스터디가 시작했다. 당시 1세대 스타 강사들은 생계를 위해 학원가에 투신한 ‘386 운동권’ 출신이 많았다. 사교육업계 전설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이범의 과탐1000제’로 과학탐구의 아이콘이 된 이범 교육평론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스카이에듀를 세운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대표, ‘교육의 평등화’를 목표로 무료 강의를 제공했던 한석원 깊은생각학원 원장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인강 업체들은 스타 강사의 거취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온라인 강의라는 특성상 수강생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의 제약이 없어지면서 1타 강사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학생들이 강사를 선택하는 데 쏠림이 일어나면서 과목별 1타 강사들의 독과점 체제가 구축됐다”며 “이들이 어느 학원으로 이적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출렁인다”고 털어놨다. 2010~2016년 수학영역 전국 기준 연매출 1위 강사인 신승범의 이적, 스탠퍼드대 수학과 출신 현우진의 등장으로 메가스터디와 이투스의 매출 순위가 순식간에 뒤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 4~5년간은 강사들의 세대교체가 활발하다. 1세대 스타 강사들은 회사 대표나 교육평론, 공무원시험 등 성인·대중교육으로 자리를 옮기고 새 얼굴이 과목별 1타 강사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연령대도 1960년대생에서 1970~1980년대로 많이 낮아졌다.
대치동 국어 1타 강사로 꼽히는 김동욱(메가스터디), 업계 영어영역 1위 이명학(대성마이맥)은 1975년생이다. 이투스를 과탐명가로 만든 배기범(물리) 박상현(화학) 오지훈(지구과학) 백호(생명과학)는 1973~1979년생이다. 메가스터디 영어영역 1위 조정식(1982년생), 손주은·최진기를 잇는 ‘사회탐구계 왕’으로 불리는 이지영(1982년생), 메가스터디가 오르비스 옵티무스에 이적료를 물고 영입한 국어영역 유대종(1986년생) 등도 젊은 피에 속한다.
아이돌 뺨치는 인기 누려
수험생 사이에서 인강 강사들의 인기는 연예인을 방불케 한다. ‘인강계 아이돌’ 현우진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약 9만 명. “우진쌤 인강을 들으면 현장강의(현강) 여학생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는 후기가 올라올 정도다. 2011년부터 강사 일을 시작한 그가 지난해 320억원대 강남 빌딩을 매입한 것 역시 큰 화제가 됐다. 그 외에도 세금만 연 수십억원을 내는 유명 강사가 수두룩하다.
이들이 입시설명회에 나서면 그들의 교재에 사인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들은 인강으로만 보던 ‘쌤’을 실제로 만났다는 흥분에 들뜬다. 올해 수험생이 된 정가은 양은 “좋은 대학 가서 꼭 ‘갓기상’(신을 뜻하는 God와 이기상 메가스터디 지리강사의 합성어)쌤의 조교 알바를 하는 게 꿈”이라며 “수능을 치르기 전에 꼭 쌤의 사인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대입이 아닌, 다른 영역에 진출하는 강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콘텐츠와 강의 전달력을 동시에 갖춘 인강 강사들의 인기가 학원가를 뛰어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와 역사를 접목한 강의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설민석(이투스 한국사), TV 인문학 강의에 진출한 최진기가 대표적이다. 지리영역에서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이기상(메가스터디) 역시 팟캐스트 업체 팟빵으로부터 지리와 여행을 엮은 콘텐츠를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 진출 움직임도 활발하다. ‘큰별쌤’ 최태성 이투스 한국사 강사는 오는 3월을 목표로 독자 유튜브 채널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강사들은 보통 강의영상을 해당 업체에 독점 공급하도록 계약을 맺고 있다”며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도 계약위반이 아닌지 문의하는 강사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외모도 1타 강사의 경쟁력
직장인 김혜원 씨(32)는 심심하면 유튜브에서 ‘썰강’을 찾아본다. 썰강은 인강 강사들이 수업 중에 한 재밌는 얘기만 떼내 5분 안팎으로 편집한 영상이다. 김씨는 “1세대 인강 강사들은 주로 정치적인 발언이나 수험 생활에 경각심을 주는 훈계로 화제가 됐다”며 “반면 요즘 강사들은 자신의 입시 에피소드, 대학 시절 추억담 등이 썰강으로 퍼지며 입시와 전혀 관계없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된다”고 말했다.
썰강은 원래 인강을 듣던 학생들이 불법으로 만들어 공유하던 것이다.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지만 썰강이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자 최근에는 아예 각 학원에서 자체 유튜브를 개설해 강의·썰강 영상을 올리며 강사들의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10대들이 즐겨 보는 웹드라마 주인공을 앞세운 유튜브 광고를 제작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증샷’ 이벤트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인터넷 강의 업체 홍보담당자는 “원래 인강 버스 광고는 학생들이 내리기 전 버스카드를 찍을 때 볼 수 있도록 버스 안에만 하는 게 관행이었다”며 “요즘은 경쟁이 격화돼 버스 밖에도 래핑 광고를 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다 보니 강사들의 외모도 경쟁력으로 평가받는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수술·시술 등 외모관리를 받는 이도 많다. 학원가에서도 신입 강사를 공모할 때 카메라 테스트가 필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입담 또는 외모 등은 부차적인 것이고 기본적으로 실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학생들의 선택은 냉정해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절대로 1타 강사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현진/구은서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