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데스크 시각] 국가상징거리, '아량'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광화문 광장 리모델링 계획을 놓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직로~율곡로의 교통대란이 불 보듯 뻔한데 그대로 추진해야 하는지, 2008년 조성한 광장을 1040억원을 들여 다시 파헤쳐야 하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시대 육조거리를 재현하고 해태와 월대(月臺·궁전 건물 앞에 설치한 높고 넓은 단상)를 복원하겠다는 계획에 이르면 반대 목소리는 더 커진다. 제대로 된 국가상징거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더라도 ‘민주국가에 웬 왕궁 복원이냐’는 식의 주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가상징거리가 보여줘야 할 것은 건국 과정 등의 역사,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와 감사, 국가 공동체의 가치와 비전 등이다. 세계 각국이 이런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수도의 핵심 거리를 ‘회고와 다짐의 공간’으로 만든다.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몰이 그렇고,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이 그렇고, 중국 베이징의 창안다제(長安大街)도 마찬가지다.

'네이션 빌딩'의 어려움

물론 우리에겐 식민지 피지배 역사와 급속한 현대화가 그런 스토리텔링을 원천봉쇄해 버린 측면이 있다. 일제가 옛 총독부 건물로 경복궁 앞을 막아버리고, 뜬금없는 다목적홀(세종문화회관)을 섬처럼 뚝딱 지어놨으니 수미일관된 국가상징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 됐다. 좀 더 솔직해지면 더 큰 문제가 버티고 섰다. 우리 근현대사를 평가할 때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하나의 가치체계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국경절 논쟁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를 둘러싼 혼란, 최근의 김원봉 국가서훈 수여 논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진영 논리’만 있었을 뿐 국가적 컨센서스는 난망한 일이 됐다.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이란 말로 대표할 수 있는 민족 공동체 가치 만들기가 당장은 물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네이션 빌딩’이란 관점에서 ‘아량’과 ‘관용’의 미덕이 발휘된 사례가 적지 않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에 이르는 길에는 ‘윈스턴 처칠 거리’ ‘아이젠하워 거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역’이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가 설치됐던 혁명 광장이 지금은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 광장이 됐다. 대립·갈등과 투쟁의 역사, 외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프랑스인 나름의 관용과 아량, 포용력으로 끌어안은 결과다.

'역사성 회복'의 중요성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혹한 노예제(노비제도)를 운영한 사회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사대부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가치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서열을 강조, 결과적으로 자생적 근대화의 길을 막아버렸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역사 인식이 투영된 결과 ‘봉건사회를 상징하는 옛 궁궐 일대의 복원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식의 반론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선은 자랑스러운 선진문화국가의 역사도 갖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으로 창조됐다는 문자인 한글, 고려청자의 유산을 이은 이조백자와 청화백자,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려한 지붕마루(지붕의 선)와 단청이 살린 고건축 등. 광화문에 월대와 해태, 육조거리를 살리는 것은 이런 자긍심을 잃지 말자는 차원의 ‘역사성 회복’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우리도 이런 의미의 네이션 빌딩 하나쯤은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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