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없이 보낸 '굴곡의 2년'은 골퍼인생 '가치' 찾아헤맨 시간
"필드 위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팬들이 원하는 모습 못 보여줘"
올해 목표는 '세계랭킹 올리기'…기부도 소통도 열심히 할 것
최근 만난 전인지는 “2018년 경기를 할 때 매 순간 오간 여러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만큼 내 골프 인생에서 굴곡이 심한 해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작년 10월 국내에서 열린 여자골프 국가대항전 UL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4전 전승으로 한국팀 우승을 이끌더니 이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선 우승컵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6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뒤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까지 2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전인지는 그동안 준우승만 여섯 번 하며 징크스에 시달려야 했다. 스스로 괜찮다고 되뇌었지만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를 향한 주변의 기대는 심적인 부담으로 이어졌다. 스트레스에 병원 신세까지 질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전인지는 “마음이 힘든 상태다 보니 기술적으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며 “내가 하고자 한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몸보다 마음이 문제였다”며 “대회장에서도 집중이 안 되다 보니 모든 부분에서 부족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인지는 슬럼프 기간 꾸준히 해온 기부활동에 매진했다. 2017년 에비앙 챔피언십을 앞두고 독일 주니어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에 자신의 이름을 건 장학재단을 출범시켰고 7월엔 모교인 고려대 사회공헌 활동 프로그램에 1억원을 쾌척했다. 그럼에도 우승소식이 끊긴 그에게 돌아온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하라’는 악성 댓글도 있었다. 평소 영어 공부까지 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팬들과 소통하기 좋아하던 전인지에겐 큰 상처로 다가온 시간이었다.
전인지는 “결국 (필드 위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팬들에게 내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며 “불안했던 마음을 정리하고 오직 골프만 생각하던 그 마음가짐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시간을 이기고 지난해 우승했고 또 그 우승을 한국 팬 앞에서 해 뜻깊었던 것 같다”며 “우승하면서 골프선수로서 의욕이 다시 생겼고 더 열심히 연습해 올해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고 했다.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온 전인지는 올해 속도를 붙일 예정이다. 그가 밝힌 올해 목표는 ‘세계랭킹 올리기’다. 그는 올해 첫 대회인 다이아몬드리조트 토너먼트에서 공동 12위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오는 21일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즌을 시작한다. 골프장 밖에서 해온 기부활동과 팬들과의 소통 등도 열심히 할 계획이다.
전인지는 “다시 의욕이 생긴 만큼 부족한 부분을 이른 시간 안에 보완하겠다”며 “필드 위에서도, 밖에서도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아널드 파머 같은 선수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인지의 '확률 골프' 꿀팁
"장타 유혹 꾹 참고 자신있는 거리 남기세요"
전인지가 지난해 10월 인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확률 골프’가 있다. 수학영재 출신으로 IQ(지능지수) 137을 자랑하는 전인지는 그동안 가장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는 샷의 거리를 남겨놓곤 했다. 홀마다 어느 지점에 공을 보내고 또 얼마만큼의 거리를 남겨 놓느냐에 따라 그린 공략 성공률 차이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인지는 홀까지 3번 우드로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면 무리하게 투온을 시도하지 않는다. 확률이 낮은 샷을 구사해 그린 주변 벙커에 공을 빠뜨리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60~70m 거리만 남겨놓도록 끊어 가는 것이다.
전인지는 우승 비결을 전하며 “2온이 가능한 파5홀들이 있었지만 꾹 참고 60m가량 남게 끊어가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확률 골프를 앞세워 당시 3, 4라운드에서 수많은 버디 기회를 잡았고, 이틀 동안 모두 7개의 버디를 낚아챘다.
전인지는 “바람을 등져 더 멀리 칠 수 있어도 유혹을 참고 내 경기를 해야 한다”며 “(수많은 투온 유혹에도) 장타 유혹을 접은 게 되레 우승에 가까워진 이유였다”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