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예상했던 것보다 세계 경제가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며 각국 정부는 ‘경제적 스톰(폭풍)’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IMF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7%에서 3.5%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라가르드 "번개 한 방이면 폭풍 시작"…글로벌 '4대 먹구름' 경고
라가르드 총재는 1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WGS)에서 ‘4대 먹구름’이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꼽은 네 가지 위험 요소는 글로벌 무역갈등, 금융 긴축,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다. 라가르드 총재는 “구름이 많이 끼어 있으면 단 한 번의 번개만으로도 폭풍이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IMF는 그동안 여러 차례 미국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가 글로벌 경기 둔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무역 긴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미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라며 “(관세 전쟁은) 무역에 대한 신뢰, 경제 심리 등을 해쳐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7%에서 3.5%로, 내년 성장률은 3.7%에서 3.6%로 낮췄다. 당시 라가르드 총재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당장 임박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각국 정부와 기업, 가계가 부채를 과도하게 늘려왔다”며 차입비용 증가에 따른 리스크도 지적했다. 브렉시트와 관련해서는 “영국이 브렉시트를 안 하는 게 가장 좋다”며 “순조롭게 브렉시트를 하든 그렇지 못하든 3월 29일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고 언급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전날 두바이에서 열린 아랍재정포럼에도 참석해 치솟는 아랍 국가들의 공공부채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특히 산유국들이 인적 자원과 인프라 투자 등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신재생에너지 같은 프로젝트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 재생에너지 관련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자칫 ‘하얀 코끼리’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하얀 코끼리는 겉이 화려하지만 비용은 많이 들고 실속이 없는 일을 뜻한다.

라가르드 총재는 중동 국가들의 공공부채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산유국들이 유가 하락으로 세수가 감소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중동 국가들이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 도입 등 세수와 지출 측면에서 중요한 개혁에 나섰지만 재정적자는 개선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IMF에 따르면 중동 산유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013년 13%에서 지난해 33%로 높아졌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