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 떠나온 자율車 인재의 苦言
2017년 6월 22일 오후 2시2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놓인 자율주행자동차 ‘스누버’에 시동이 걸렸다. 서울대 지능형자동차 정보기술(IT)연구센터팀이 세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토르드라이브가 제작한 차량이었다. 스누버는 마포대교 교차로와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KBS를 거쳐 다시 국회 앞으로 돌아오는 약 4㎞ 구간을 스스로 주행했다. 국내 첫 도심 자율주행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토르드라이브는 자율주행차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와 제자들이 의기투합해 2015년 설립했다. 한국 도로에 최적화한 자율주행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사물 인식, 측위, 지도, 차량제어 기술을 개발해왔다. 여의도 첫 도심 주행을 포함해 6만㎞ 이상 무사고로 주행하면서 기술력을 입증했다.

투자만 제대로 받으면 될 터였다. 그러나 ‘규제 장벽’은 높았다. 해외 벤처캐피털(VC)은 한국에 거점을 둔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를 꺼렸다. 우버 같은 호출형 차량공유 서비스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고, 심지어 카풀 서비스조차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투자자는 떠나갔다.

국내 대기업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는 상용 서비스를 제시하지 못하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반 차를 자율주행차로 개조하는 데 최소 1억~2억원이 들지만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 계동경 토르드라이브 대표의 말이다. 서울 도심 등 한국에서 쌓아온 자율주행차 데이터가 투자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계 대표 등 연구팀 5명은 결국 2017년 12월 미국 실리콘밸리로 넘어와 법인을 세웠다. 자율주행차 연구가 활발한 실리콘밸리에서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각오였다. 성과는 차츰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는 5000개 매장을 가진 미국 대형 건자재업체 에이스하드웨어와 함께 본격적으로 자율주행 택배 시범 서비스를 펼쳤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 사례를 만드니 국내외 투자자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토르드라이브는 지난달 이마트, SK텔레콤 등과 잇달아 자율주행 서비스를 위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한국 상용 서비스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상업 목적의 자율주행 서비스는 도로교통법, 자동차관리법 등 해결해야 할 규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주 정부들은 자율주행차 상용 서비스를 적극 지원하고 관련 스타트업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우버, 웨이모(구글의 자율주행차 부문) 등의 자율주행차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우버, 리프트 등 차량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어 미래 자율주행 관련 서비스와 접목될 가능성도 높다. 실리콘밸리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죽스(ZOOX)가 기업가치 32억달러(약 3조6000억원)의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토르드라이브는 궁극적으로 한국 자율주행차 산업을 혁신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구글 등 외국계 기업보다 한국형 자율주행차 개발에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규제죠. 기존 서비스와의 이해 상충을 최소화하면서도 신사업을 확대할 기회는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도서지역 등 교통 취약지의 배달, 셔틀 서비스를 자율주행으로 풀어볼 수 있겠죠. 정부도 맘먹으면 이런 분야를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을 떠나야만 했던 자율주행차 인재의 고언(苦言)이다.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