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스틸 등 미국 철강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수입 철강에 대한 25% 관세 부과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에 힘입어 이익이 증가한 미 철강 회사들이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첨단 설비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한국 철강업계가 주로 수출하던 송유관 등을 미국산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관세 울타리' 1년…녹슬던 美 철강사 용광로 펄펄 끓는다
US스틸은 11일(현지시간) 앨라배마 전기로 공장의 생산능력을 160만t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엔 2억1500만달러(약 2416억원)가 투입되며 내년 하반기 완공된다. 이 전기로에선 한국 철강업계가 주로 수출해온 송유관, 유정용 강관 등의 재료를 생산한다.

US스틸은 2015년 3월 전기로 공사에 착공했다가 유가가 폭락하자 그해 말 공사를 중단했다. 데이비드 버릿 최고경영자(CEO)는 “전기로가 완공되면 강관 제조원가를 낮춰 중장기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이런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행동과 나아진 시장 환경 덕분”이라고 말했다.

US스틸은 작년 3월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산 철강에 대한 고율 관세를 부과한 뒤 세인트루이스 제련소의 연산 280만t 규모 용광로를 재가동했다. 또 지난 4일 텍사스 공장의 연산 40만t급 용광로도 다시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가동을 멈춘 설비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3월 일본, 중국 등의 철강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엔 대상을 유럽과 멕시코, 캐나다로 확대했다. 덕분에 미 철강업계 실적은 대폭 개선됐다. 값싼 수입 철강이 사라지자 미국 내 철강값이 급등해서다. 작년 초 t당 600달러대이던 열연코일값은 가을께 t당 1000달러까지 올랐다.

덕분에 US스틸은 2018년 11억1500만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2017년(3억8700만달러)에 비해 세 배가량 늘었다. 뉴코, 스틸다이내믹스 등 다른 철강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존 펠리오라 뉴코 CEO는 “2018년은 어떤 면으로 봐도 최고의 한 해였다”고 말했다.

실적 호전에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US스틸은 2017년 5억5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지난해 10억100만달러로 늘렸고 올해는 11억2000만달러를 투입한다. 뉴코, 스틸다이내믹스 등도 앞으로 3년 동안 미국에서 1000만t 이상의 제강 능력을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십 년간 별다른 투자를 못한 미국 철강 업체들은 첨단 설비를 도입해 비용 절감 등 체질을 개선할 계획이다. 최근 완공된 오스트리아의 푀스트알피네 철강공장에선 1960년대 1000여 명이 생산하던 강선 50만t을 현재 14명이 만들고 있다.

부작용도 있다. 철강재 수요가 많은 포드자동차는 지난해 철강 가격 상승으로 원자재값만 11억달러를 추가로 지출했다. 거기에 관세 비용도 7억5000만달러를 냈다. 캐터필러는 지난해 원자재 부담이 1억달러 더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월풀도 철강과 알루미늄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지난해 3억달러 증가했다.

미국 내 철강 가격은 작년 가을 이후 내려가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이 불거진 데다 증산 투자로 철강 공급량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알렉산더 해킹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철강 수요가 약해질 가능성이 있는데 업체들이 증산을 계획하고 있어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