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1억 손실"…중개업소 무덤된 헬리오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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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중개 경쟁에…"공멸 직전"
수수료요율 두고 소유주 압력도
수수료요율 두고 소유주 압력도
“전국에서 선수란 선수는 다 모였었는데 요즘은 죄다 보따리 싸고 나갑니다. 억대 손실을 본 곳이 흔해요.”
14일 서울 가락동 ‘송파헬리오시티’ 인근에서 영업 중인 A공인 대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꼴”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역대 최대 규모 입주가 진행됐지만 이를 노리고 모인 중개업소들이 제 살 깎아먹기식 수수료 경쟁을 벌인 탓에 공멸 직전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소유주들이 중개수수료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집단으로 압력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수료 ‘0%’ 내거는 곳도
가락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최근 문을 닫는 중개업소가 늘고 있다. 지난 연말을 전후로 최대 300여 곳이 성업했지만 지금은 20~30%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몇 개월 동안 계약서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한 탓에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A공인 관계자는 “입주하는 아파트만 골라 다니던 중개업소들이 뭣도 모르고 왔다가 울면서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헬리오시티 주변에 중개업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던 건 아파트의 규모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총 9510가구로 단일 단지 가운데 역대 가장 크다. 수천 건의 전·월세 거래를 예상하고 전국에서 ‘선수’들이 모였다. 입주장을 전문으로 다루는 중개업소들이다. 이들이 몰리면서 일대 임대료는 2배 이상 치솟았다. 지하철 8호선 송파역 인근 1층 상가 전용 36㎡의 임대료는 보증금 1억원에 월 300만원 안팎이다. 불과 2년 전엔 비슷한 조건의 상가가 보증금 4000만원에 월 130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비싼 값을 치르고 입주장에 뛰어든 중개업소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수수료 경쟁이 벌어진 탓에 본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B공인 관계자는 “6억원짜리 전세 물건을 정상 중개하면 0.8% 요율을 적용해 임대인과 임차인에게서 480만원씩 1000만원 가까이를 받는 게 정상”이라면서 “하지만 이곳에선 어떻게든 매물을 확보하기 위해 임대인에게는 수수료를 안 받거나 100만원 정액제로 광고하는 업소들이 많다”고 말했다. 저가 수주 혈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한 임차인이 여러 곳의 중개업소를 두고 수수료 할인 경쟁을 붙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개수수료를 두고 아파트 소유주 일부의 압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수수료율 0.2%가 아니면 세를 내놓지 말라는 식으로 짬짜미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 같은 요율로는 4번을 거래해야 정상 거래 한 번과 같은 금액을 받지만 그마저도 못 하는 곳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마포에서 헬리오시티 전세계약?
저가 수수료 경쟁이 촉발된 건 아파트 소유주 정보가 사실상 서울 전역으로 퍼진 영향이 크다고 현지 중개업소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봄부터 이미 강북과 강남, 위례신도시 일선 중개업소에 헬리오시티 소유주 정보가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입자라면 서울 어디서든 헬리오시티 전세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A공인 관계자는 “마포에서도 똑같은 물건을 구할 수 있으니 굳이 가락동까지 와서 계약할 필요가 없다”며 “입주장에선 암암리에 있는 일이지만 이곳은 정도를 넘어섰다”고 토로했다. B공인 관계자는 “가락동엔 6개월 동안 계약서 한 장 쓰지 못한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책 영향으로 매매·전세 수요가 확 줄어든 것도 중개업소들이 고전하는 원인이다. 조합원 지위양도가 막혀 매매거래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지난해 ‘9·13 대책’으로 전세거래까지 줄었다. 1주택자의 고가주택(실거래가 9억원)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 조건에 2년 거주 요건이 신설된 영향이다. 2020년 1월 매도분부터는 바뀐 장특공제 조건이 적용되기 때문에 나중에 집을 팔 때 양도소득세를 아끼려는 집주인들이 세를 놓기보단 대거 입주로 돌아섰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이 전하는 분위기다.
가락동 C공인 관계자는 “당초 전세 물건이 4000개가량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특공제 요건 강화로 1000개 정도가 줄어들었다”며 “3000가구 정도의 전세 물건을 두고 수백 곳의 중개업소가 경쟁하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슬금슬금 오르는 전셋값
중개업소들 사이에서 역대 최악의 입주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전셋값은 슬슬 반등하는 추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헬리오시티 전용 84㎡ 평균 전세 실거래가격은 지난달 6억965만원에서 이달 현재 6억2500만원까지 올랐다.
입주 초기만 해도 1년 계약이나 선순위 대출 등의 조건으로 전용 84㎡ 기준 5억원대 전세 물건이 다수 나왔다. 이 영향으로 평균 전세가격은 6억원 선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저가 전세가 우선 소진된 데다 잠실 진주아파트 이주가 결정되는 등 주변 재건축 단지 이주수요의 영향으로 반등이 시작됐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D공인 관계자는 “오는 21일까지 전입신고를 해야 자녀가 단지 내 초등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까닭에 이달이 입주 피크가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매매 호가는 고점 대비 2억원가량 떨어졌다. 전용 84㎡는 지난해 말 최고 17억원을 웃돌았지만 최근엔 15억원 초반대에 급매물이 나온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14일 서울 가락동 ‘송파헬리오시티’ 인근에서 영업 중인 A공인 대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꼴”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역대 최대 규모 입주가 진행됐지만 이를 노리고 모인 중개업소들이 제 살 깎아먹기식 수수료 경쟁을 벌인 탓에 공멸 직전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소유주들이 중개수수료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집단으로 압력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수료 ‘0%’ 내거는 곳도
가락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최근 문을 닫는 중개업소가 늘고 있다. 지난 연말을 전후로 최대 300여 곳이 성업했지만 지금은 20~30%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몇 개월 동안 계약서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한 탓에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A공인 관계자는 “입주하는 아파트만 골라 다니던 중개업소들이 뭣도 모르고 왔다가 울면서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헬리오시티 주변에 중개업소들이 구름떼처럼 몰렸던 건 아파트의 규모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총 9510가구로 단일 단지 가운데 역대 가장 크다. 수천 건의 전·월세 거래를 예상하고 전국에서 ‘선수’들이 모였다. 입주장을 전문으로 다루는 중개업소들이다. 이들이 몰리면서 일대 임대료는 2배 이상 치솟았다. 지하철 8호선 송파역 인근 1층 상가 전용 36㎡의 임대료는 보증금 1억원에 월 300만원 안팎이다. 불과 2년 전엔 비슷한 조건의 상가가 보증금 4000만원에 월 130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비싼 값을 치르고 입주장에 뛰어든 중개업소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수수료 경쟁이 벌어진 탓에 본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B공인 관계자는 “6억원짜리 전세 물건을 정상 중개하면 0.8% 요율을 적용해 임대인과 임차인에게서 480만원씩 1000만원 가까이를 받는 게 정상”이라면서 “하지만 이곳에선 어떻게든 매물을 확보하기 위해 임대인에게는 수수료를 안 받거나 100만원 정액제로 광고하는 업소들이 많다”고 말했다. 저가 수주 혈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한 임차인이 여러 곳의 중개업소를 두고 수수료 할인 경쟁을 붙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개수수료를 두고 아파트 소유주 일부의 압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수수료율 0.2%가 아니면 세를 내놓지 말라는 식으로 짬짜미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 같은 요율로는 4번을 거래해야 정상 거래 한 번과 같은 금액을 받지만 그마저도 못 하는 곳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마포에서 헬리오시티 전세계약?
저가 수수료 경쟁이 촉발된 건 아파트 소유주 정보가 사실상 서울 전역으로 퍼진 영향이 크다고 현지 중개업소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봄부터 이미 강북과 강남, 위례신도시 일선 중개업소에 헬리오시티 소유주 정보가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입자라면 서울 어디서든 헬리오시티 전세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A공인 관계자는 “마포에서도 똑같은 물건을 구할 수 있으니 굳이 가락동까지 와서 계약할 필요가 없다”며 “입주장에선 암암리에 있는 일이지만 이곳은 정도를 넘어섰다”고 토로했다. B공인 관계자는 “가락동엔 6개월 동안 계약서 한 장 쓰지 못한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책 영향으로 매매·전세 수요가 확 줄어든 것도 중개업소들이 고전하는 원인이다. 조합원 지위양도가 막혀 매매거래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지난해 ‘9·13 대책’으로 전세거래까지 줄었다. 1주택자의 고가주택(실거래가 9억원)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 조건에 2년 거주 요건이 신설된 영향이다. 2020년 1월 매도분부터는 바뀐 장특공제 조건이 적용되기 때문에 나중에 집을 팔 때 양도소득세를 아끼려는 집주인들이 세를 놓기보단 대거 입주로 돌아섰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이 전하는 분위기다.
가락동 C공인 관계자는 “당초 전세 물건이 4000개가량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특공제 요건 강화로 1000개 정도가 줄어들었다”며 “3000가구 정도의 전세 물건을 두고 수백 곳의 중개업소가 경쟁하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슬금슬금 오르는 전셋값
중개업소들 사이에서 역대 최악의 입주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전셋값은 슬슬 반등하는 추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헬리오시티 전용 84㎡ 평균 전세 실거래가격은 지난달 6억965만원에서 이달 현재 6억2500만원까지 올랐다.
입주 초기만 해도 1년 계약이나 선순위 대출 등의 조건으로 전용 84㎡ 기준 5억원대 전세 물건이 다수 나왔다. 이 영향으로 평균 전세가격은 6억원 선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저가 전세가 우선 소진된 데다 잠실 진주아파트 이주가 결정되는 등 주변 재건축 단지 이주수요의 영향으로 반등이 시작됐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D공인 관계자는 “오는 21일까지 전입신고를 해야 자녀가 단지 내 초등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까닭에 이달이 입주 피크가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매매 호가는 고점 대비 2억원가량 떨어졌다. 전용 84㎡는 지난해 말 최고 17억원을 웃돌았지만 최근엔 15억원 초반대에 급매물이 나온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