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박수 유감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박수 소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어디일까? 아마도 예술의전당이 아닐까. 매일 밤 10시쯤 되면 콘서트홀과 오페라극장을 비롯해 6개 공연장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와 함성 소리가 우레와 같다. 박수와 함성. 예술가들은 이것으로 살아간다. 입으로 먹는 음식보다 귀로 듣는 뜨거운 박수가 예술가로 살아가는 에너지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본래 우리나라에서는 활쏘기나 투호를 할 때 혹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놀 때 흥이 나면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다’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고 보면 근대식 공연이나 음악회가 활발해지면서 박수를 치는 것도 보편화된 게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우리는 손으로 무얼 친다고 할 때 손뼉이 아니라 가슴을 치거나 땅을 쳤던 모습을 떠올린다. 물론 그것은 찬사의 표현이 아니라 원통과 슬픔의 표현이었다.

박수에 관해서는 서양과 우리나라 풍경이 요즘에도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는 제 아무리 훌륭한 연설이나 음악을 듣더라도 대개는 앉아서 열심히 박수를 치지, 앉은 자리에서 기립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연설 문장 하나가 끝날 때 많은 참석자들이 일어나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필자는 속으로 ‘참 엉덩이가 가볍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회에서의 박수는 차라리 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색없는 관객이 악장과 악장 사이에 거침없이 박수를 치는가 하면, 음악이 한창 진행되는 중간에 박수를 치는 경우도 있다. 연주곡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브라보를 외치며 치는 ‘안다 박수’도 빼놓을 수 없다.

어디 박수뿐이랴. 휘파람을 요란하게 불어대는 사람도 있다. 나라에 따라서는 휘파람을 야유로 간주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적당히 가려서 해야 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나 도둑이 온다고 해 금기시한 적이 있지 않았나. 송강 정철의 시조 장진주사(將進酒辭)에 나오는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제 뉘우친들 어쩌리’라는 연을 보면, 휘파람 소리는 우리에게 찬사의 소리는 아니었다.

박수든 휘파람이든 야유보다는 낫다. 마음에 들면 몇 번이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박수를 치는 서양 관객들은 예술가의 연주가 조금만 틀리거나 이상하면 여지없이 “우~” 하고 일제히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대체로 점잖게 앉아 박수를 치고 야유를 자제하는 우리 관객이 어쩌면 세계 최고의 관객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