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다시 채무자의 빚 탕감에 나서자 금융회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재원으로 해결해야 할 금융 취약층 지원을 은행 등 민간 금융사의 ‘곳간’을 털어 지원하기로 해 무리한 행정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18일 발표한 대책에서 은행 등 금융사들이 가장 크게 문제삼는 것은 ‘상각 전 채권에 대한 빚 탕감’이다. 금융위는 연체가 30일이 지나지 않았어도 원금 상환을 유예하는 신속지원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금융사가 장부상 손실 처리(상각)하지 않은 빚에 대해 최대 30%까지 원금을 깎아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금융사들은 정부가 상각 전 채권에 대한 빚 탕감에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고 보고 있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상각하지 않은 채권은 회수가 가능하다고 금융사가 판단한 것”이라며 “금융사의 자산인 미상각 채권에 대한 원금 감면을 계약 대상자가 아니라 정부가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원금 감면을 통해 채무자가 위기에서 벗어나면 회수율이 올라 금융사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캐피털업체 사장은 “상각된 채권도 매각 또는 추심을 통해 채무액 가운데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며 “결국 빚은 금융사들이 깎아주고 생색은 정부가 내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서민금융 정책을 명분으로 한 정부의 금융사 ‘팔 비틀기’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개인 워크아웃, 파산 등의 신용회복 절차가 있음에도 정부가 생색내기용 정책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며 “수많은 서민금융 정책 가운데 정부가 직접 재원을 대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원금과 이자를 탕감해주거나 유예기간을 늘려주면 금융회사도 일정 부분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반강제적으로 정책이 시행되니 손실을 감수하고 따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한쪽에선 빚을 탕감해주고 다른 한쪽에선 연체율 관리를 강화하라고 하는데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