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나라 빚 늘면 성장판 닫힌다"…경제학 논쟁으로 번진 '美 국가부채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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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걱정…달러 더 찍어 메워라"
주류 경제학자들의 경고
트럼프 집권 후 2조달러 증가
연방정부 적자 年 1조弗 넘어…신용 경색·세수기반 붕괴 우려
현대화폐론자들의 반박
국가부채는 장부상 수치일 뿐, 더 많은 부채 감당할 여력 있어
교육·의료·인프라 투자 늘려야
주류 경제학자들의 경고
트럼프 집권 후 2조달러 증가
연방정부 적자 年 1조弗 넘어…신용 경색·세수기반 붕괴 우려
현대화폐론자들의 반박
국가부채는 장부상 수치일 뿐, 더 많은 부채 감당할 여력 있어
교육·의료·인프라 투자 늘려야
22조달러(약 2경4743조원)를 넘어선 미국 국가부채를 둘러싸고 경제학자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 경제이론은 ‘세수를 과도하게 넘어서는 정부 지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지 균형을 강조해왔다. 국가 채무가 일정한 선을 넘으면 성장이 느려지고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저금리·저물가 상황에서는 긴요한 정부부채 증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늘고 있다. 일부 좌파 성향의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은 “정부는 빚 걱정 말고 화폐를 찍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은 비주류 경제이론인 ‘현대화폐이론(MMT)’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때인 2017년 1월 19조9500억달러였지만 이달엔 22조달러를 웃돌았다. 가장 큰 건 연방정부 적자다. 지난해 8700억달러 늘었고 올해부터는 매년 1조달러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34%에서 현재 78%로 치솟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과도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증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신용 경색을 일으키고 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결국 부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냐 깁스 국제금융협회(IIF) 이사는 “부채가 많아질수록 경제 성장을 자극하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로런스 코틀리코프 보스턴대 교수는 “미 경제가 빚으로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며 “빚 부담으로 성장이 느려지면 청년들이 좀 더 나은 나라로 이주할 것이고 이는 세수기반 붕괴로 이어져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 목소리는 예전만큼 크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일 “국가 채무가 22조달러를 넘었지만 어느 정당도 부채 축소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다”며 “전임 행정부 시절 부채 증가 책임을 놓고 서로 공격했던 것과는 상황이 급변했다”고 전했다.
몇몇 저명 경제학자도 정부부채를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금리와 물가상승률 폭이 대폭 낮아져 부채 부담이 과거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미 국채 10년물의 실질 금리는 2000년 연 4.3%에서 지난해 연 0.8%로 하락했다. 금리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소비·투자가 줄면 계속 낮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미국경제학회장(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미국경제학회에서 “지금 정부부채 수준은 큰 재앙이 아니며 적절한 이유가 있다면 더 많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다”며 전통적 견해를 재고할 것을 권고했다. 그는 “정부 차입 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면 계속 부채를 조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포린어페어 기고문에서 “금리가 장기간에 걸쳐 구조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정책입안자는 ‘재정 적자’보다 긴급한 사회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며 “전통적 재정 접근법을 바꿔 교육, 의료, 인프라 등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좌파 학자는 MMT 이론을 앞세워 정부 부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한다.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의 고문인 스테퍼니 켈턴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정부 부채란 대차대조표상에 나타나는 수치일 뿐이며 화폐를 직접 찍어낼 수 있는 정부는 부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화폐를 찍어내는 것은 어차피 정부이기 때문에 재정을 아낄 필요가 없으며,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면 국채를 풀어 유동성을 조절하면 된다는 것이다.
MMT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부 부채가 GDP의 230%가 넘는 일본 경제가 탄탄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샌더스 의원,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 등 좌파 정치인들도 이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는 아직 MMT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버클리대의 앨런 아우어바크 교수는 “MMT 이론은 그냥 어리석다”며 “예기치 않았거나 원치 않는 인플레이션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머스 교수도 “정치인들은 재정적 제약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침체기가 아니라면 부채가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러나 엔화는 기축통화여서 찍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다른 통화에 일반적으로 MMT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김현석 특파원/정연일 기자 realist@hankyung.com
전통적 경제이론은 ‘세수를 과도하게 넘어서는 정부 지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지 균형을 강조해왔다. 국가 채무가 일정한 선을 넘으면 성장이 느려지고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저금리·저물가 상황에서는 긴요한 정부부채 증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늘고 있다. 일부 좌파 성향의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은 “정부는 빚 걱정 말고 화폐를 찍어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은 비주류 경제이론인 ‘현대화폐이론(MMT)’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때인 2017년 1월 19조9500억달러였지만 이달엔 22조달러를 웃돌았다. 가장 큰 건 연방정부 적자다. 지난해 8700억달러 늘었고 올해부터는 매년 1조달러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34%에서 현재 78%로 치솟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과도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증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신용 경색을 일으키고 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결국 부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냐 깁스 국제금융협회(IIF) 이사는 “부채가 많아질수록 경제 성장을 자극하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로런스 코틀리코프 보스턴대 교수는 “미 경제가 빚으로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며 “빚 부담으로 성장이 느려지면 청년들이 좀 더 나은 나라로 이주할 것이고 이는 세수기반 붕괴로 이어져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 목소리는 예전만큼 크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일 “국가 채무가 22조달러를 넘었지만 어느 정당도 부채 축소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다”며 “전임 행정부 시절 부채 증가 책임을 놓고 서로 공격했던 것과는 상황이 급변했다”고 전했다.
몇몇 저명 경제학자도 정부부채를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금리와 물가상승률 폭이 대폭 낮아져 부채 부담이 과거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미 국채 10년물의 실질 금리는 2000년 연 4.3%에서 지난해 연 0.8%로 하락했다. 금리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소비·투자가 줄면 계속 낮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미국경제학회장(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미국경제학회에서 “지금 정부부채 수준은 큰 재앙이 아니며 적절한 이유가 있다면 더 많은 부채를 감당할 수 있다”며 전통적 견해를 재고할 것을 권고했다. 그는 “정부 차입 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면 계속 부채를 조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포린어페어 기고문에서 “금리가 장기간에 걸쳐 구조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정책입안자는 ‘재정 적자’보다 긴급한 사회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며 “전통적 재정 접근법을 바꿔 교육, 의료, 인프라 등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좌파 학자는 MMT 이론을 앞세워 정부 부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한다.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의 고문인 스테퍼니 켈턴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정부 부채란 대차대조표상에 나타나는 수치일 뿐이며 화폐를 직접 찍어낼 수 있는 정부는 부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화폐를 찍어내는 것은 어차피 정부이기 때문에 재정을 아낄 필요가 없으며,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면 국채를 풀어 유동성을 조절하면 된다는 것이다.
MMT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부 부채가 GDP의 230%가 넘는 일본 경제가 탄탄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샌더스 의원,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 등 좌파 정치인들도 이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는 아직 MMT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버클리대의 앨런 아우어바크 교수는 “MMT 이론은 그냥 어리석다”며 “예기치 않았거나 원치 않는 인플레이션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머스 교수도 “정치인들은 재정적 제약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침체기가 아니라면 부채가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러나 엔화는 기축통화여서 찍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다른 통화에 일반적으로 MMT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김현석 특파원/정연일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