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北비핵화 10년 이상 걸려…'北核 심장' 영변시설 폐쇄되면 빅딜 가능"
세계적 핵 과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75·사진)은 “북한 비핵화는 10년 이상 걸리는 길고 힘든 작업”이라며 북핵 폐기 방법으로 ‘동결(halt)-원상복구(감축, roll back)-제거(eliminate)’의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또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심장”이라며 “영구 폐쇄한다면 굉장한 빅딜(큰 거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헤커 선임연구원은 최고의 북핵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2004년 이후 수차례 북한 핵시설을 둘러봤고 2010년에도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1000여 기를 갖춘 영변 핵시설을 보고 왔다. 미 언론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막후 조언자로 그를 포함한 ‘스탠퍼드팀’을 꼽고 있다.

헤커 박사가 속한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지난 11일 내놓은 북핵 보고서에서 “2017년 30개가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지난해 5~7개의 핵무기를 더 만들 수 있을 만큼의 핵물질을 생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일부 핵 프로그램은 동결하고 원상복구 조치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북핵 폐기를 위한 과제로 미·북 신뢰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14,16일 헤커 선임연구원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건 북핵 위협을 계속 낮추는 조치를 취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려면 결국 미국은 북한의 관계 정상화 요구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수 있다’는 북한 제안을 어떻게 보는지요.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심장’입니다. 그걸 영구 폐쇄한다면 빅딜이 될 겁니다.”

▶지난해 첫 미·북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비핵화에 대한 개념 정의가 엉성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비핵화 정의는) 북한 핵무기와 생산·운반수단의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미국이 아직까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최대 압박과 제재’를 고수해왔는데, 북한이 볼 때 이는 관계 정상화와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완전한 북핵 폐기를 위한 해법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단계적 접근입니다. ‘동결-원상복구-제거’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고려해야 합니다. 북한은 체제보장이 되기 전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체제보장은 단순히 미국의 약속이나 합의문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공존과 상호의존 기간을 필요로 합니다. 북한의 거대한 핵 시설과 미·북 사이의 심각한 신뢰 결핍을 고려할 때 북한 비핵화 과정은 10년 이상 걸릴 수 있습니다.”

▶비핵화를 더 앞당길 방법은 없을지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원자력 발전, 방사선 치료, 기상예보 같은 민간 핵이용 및 우주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방안입니다. 한국과 일본도 원전 같은 민간 핵시설의 이점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과 적절한 안전장치가 수반된다면 이는 검증 가능성을 높이고 비핵화 시간표를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그는 보고서에서 북핵을 군사용에서 민간용으로 전환하면 북한 핵 기술자 등을 핵무기 해체에 활용할 수 있어 전체 폐기 과정을 5년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일지언정 북한이 보유하는 핵 프로그램을 미국이 찬성하겠습니까.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시도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무기와 군사용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원상복구한 뒤 제거하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얼마나 신뢰합니까.

“김정은이 핵무기와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하려고 할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그건 (미·북)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은 김정은이 정말 비핵화를 할지 어떨지 알아볼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북한 비핵화는 25년 넘게 실패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지점입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김정은이라는) 새 지도자가 있습니다. 남북한 화해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미·북 간) 긴장을 지난 10년 새 최저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외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생겼습니다.”

▶작년에도 북한 핵무기 능력은 확대됐습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그와 관련한 공식 협상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늘렸지만, 위협을 줄일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도 했습니다. 핵무기를 늘리기 위해선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습니다. 핵물질, 무기화(디자인·제조·시험), 그리고 운반수단입니다. 북한이 핵 물질을 계속 생산했지만, 핵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은 중단했고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등으로) 일부는 원상복구했습니다.”

▶북한이 포괄적 핵 신고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미·북 사이에 그에 대한 합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먼저 포괄적 핵 신고부터 하라’고 요구하는 게 좋은 아이디어는 아닙니다.”(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지난해 6월 25일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게재한 칼럼에서 “사찰단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북한의 모든 핵시설에 제한 없이 접근해 북한이 비밀리에 몇 개의 핵무기와 몇㎏의 플루토늄, 몇 개의 원심분리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제재를 완화하면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지렛대가 사라질 것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다음 비핵화 단계로 가기 위해선 일부 제재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핵화는 단계적 절차를 따를 것이고, 제재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핵무기가 제거되기 전까진 제재도 모두 완화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재완화가 비핵화보다 되돌리기가 더 쉽습니다.”

▶‘미국은 북한 정권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비건 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 강연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미국 정부가 매우 고무적이게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봅니다.” (비건 대표는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포괄적 핵 신고는 비핵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이뤄지기 전 어느 시점에 달성할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수차례 北核시설 둘러본 세계적인 핵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선임연구원은 세계적인 핵과학자이자 북핵 전문가다. 194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1956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정착했고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제조한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에서 1986년부터 11년 간 소장을 지냈다. 핵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미 정부가 주는 최고 권위의 엔리코페르미상을 받았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