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규제 샌드박스 넘어 시장경제 회복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 샌드박스’를 언급하며 경제살리기 의지를 보인 것은 다행이다. 정부는 수소차 충전소 설치를 규제 샌드박스 1호 사례로 내놓았다. 규제 샌드박스란 어린이가 모래상자에서 시험적 놀이를 해보듯이, ‘사업자의 신제품, 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시범사업, 임시허가 등으로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해 우선 출시될 수 있도록 하고 문제가 되면 사후에 규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2016년에 시행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심사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란 점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제품 및 서비스 유통에 집중하기 때문에 산업 전반에 걸친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신제품 출시자의 요청에 따라 사사건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도 살펴야 한다.

새로운 서비스 출시를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갈등도 난제다. 수소차 충전소를 1호 사례로 홍보하고 있지만, 입지를 둘러싼 이해당사자 갈등을 해결할 준비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 카카오의 ‘카풀’ 사례에서 보듯 신서비스의 제공은 이해당사자의 반대에 봉착하기 일쑤다. 구글, 소셜미디어, 에어비앤비, 우주항공사업 같은 신사업은 규제 샌드박스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소비자 편익과 주권을 우선시하는 시장경제 중시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 주도 규제 샌드박스의 등장과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규제 샌드박스조차 일종의 정부규제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규제 샌드박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요건, 즉 신기술, 사업 인프라, 우호적 정치·사회적 여건 조성이 필수적이다. 이렇다 할 신기술도 없고, 사업 인프라도 변변치 못한 상태인 데다가, 정치·사회적 여건도 불리한데 법령 몇 개를 바꾼다고 신사업이 계속 튀어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요술방망이처럼 홍보하는 정부 당국자는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 몰두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졸속행정과 전시행정은 물론 특혜시비와 심사 시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공감을 하고, 법령 개편을 통해 경제 활성화에 시동을 걸겠다는 정치권의 변화는 환영한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스에 너무 큰 기대는 걸지 말고, 가라앉은 경기를 회복시킬 특단의 조치와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난 2년간 ‘적폐청산 구도’에 눌려서 신사업은커녕 자기방어에 급급한 기업에 새로운 희망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겁에 질린 기업에 규제 샌드박스나 신사업 추진에 대한 압박도 할 필요가 없다. 기업이 이윤을 찾아 자유롭게 활동하게 하되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책임의 막중함을 일깨우는 수준이면 된다.

둘째, 다시는 무분별한 정치적 규제를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원자력발전 사업의 중단 사태, 비현실적인 최저임금 산정,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기준 논란 등은 정치적 규제의 대표 사례다. 법적 근거, 사실적 근거, 현실적 타당성을 무시한 정치적 규제가 어떻게 산업을 망치고, 자영업자와 청년고용을 몰락시키며, 신사업 의욕을 저하시키는지 우리는 거듭 확인해 왔다. 규제 샌드박스의 원형인 포괄적 규제심사를 통해 2016년 이후 수많은 신제품이 출시됐지만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시급한 경제정책의 초점은 고용 증대와 경제살리기에 둬야 하기 때문에 조세 경감, 투자 확대, 연구개발 특례, 노동유연성 확보 등과 같은 분야에서 큰 틀의 변화를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사업자의 자유, 창의, 모험이 용솟음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시대적 급선무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