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응조치 따라 파격 결단도…트럼프에 직접 '선물' 줄 수도
北노동신문, 주민에 '비핵화 결단' 선전…김정은에 움직일 명분 필요
[북미회담 1주앞]③김정은 '영변+α' 카드 꺼낼까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베트남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떤 비핵화 카드를 던질까.

트럼프 미 행정부가 최근 비핵화의 대가로 제재 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식 언급하는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내놓을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가 주목된다.

1차 정상회의에서 큰 틀의 합의를 이뤘지만, 북미의 합의 이행이 반년 넘게 미적거리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과 회의감이 커가는 만큼 이번 회담에서는 이를 불식시킬 실질적인 조치를 내놓아야 하는 형국이다.

이미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와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네 번째 회동에서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잇달아 내놓았다.

또 김 위원장은 지난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9월 평양공동선언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서 핵 개발의 상징인 영변 핵시설 폐기와 사찰·검증, 폭파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사찰·검증, 동창리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 폐기와 사찰·검증을 약속했다.

'상응조치'라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를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다는 것은 미국의 상응조치만 있으면 충분히 실행 가능함을 예상케 한다.

영변 핵시설은 플루토늄은 물론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추고 원자로뿐 아니라 방사화학실험실과 동위원소 생산가공연구소 등 390개 이상의 방대한 실험 및 연구시설을 갖춘 핵 개발의 산실이다.

2010년 미 스탠퍼드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 분리기 1천여기를 갖춘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직접 봤고, 현재는 우라늄 농축시설의 규모가 배로 확장됐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북미회담 1주앞]③김정은 '영변+α' 카드 꺼낼까
나아가 김 위원장이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좀 더 파격적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달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태연구소 주최 강연에서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해체와 파괴를 약속했다"며 "단순히 영변에 있는 핵시설 이외에도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을 때라고 한정했다"며 "추가로"가 중요한 의미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2차 정상회담이 두 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주 중 베트남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비건-김혁철 실무회담에서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가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영변 핵시설 폐기와 검증뿐 아니라 추가적인 조치 등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에 대한 결단은 북미 정상의 만남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상부 눈치 보기'에 익숙한 고위급 실무자들이 핵 폐기 조치를 결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상대방과 직접 대화를 통해 최종 결심을 굳히는 김정은 위원장의 특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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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의 합의문인 지난해 4월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 문구를 넣은 것도,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핵시설 폐기·검증 관련 내용 역시 김 위원장이 고위급 실무자들을 제쳐둔 채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 직후 결단해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번에도 김 위원장은 정상 간 대화 과정에서 미국의 진정성 있는 상응조치를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기와 검증 등 구체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선물'을 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13일 한반도 평화를 향한 김 위원장의 "장점은 파격적이고 속전속결식의 공세전"이라며 "기성의 관념과 뿌리 깊은 적대의식을 불사르는 과감하고 새로운 투쟁방식의 연속"이라고 평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결단을 끌어내려면 미국이 어떤 상응조치를 내놓느냐도 중요한 변수다.

비핵화를 통해 북미 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김 위원장의 구상과 지도력에 힘을 실어주려면 핵 대신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장 김정은 위원장이 '핵·경제병진' 대신 경제성장 집중 노선을 선언하고 내년이 시한인 국가발전 5개년계획을 제시한 상황에서 기득권과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눈에 띄는 대가가 있어야만 김 위원장의 결단이 명분과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회담 1주앞]③김정은 '영변+α' 카드 꺼낼까
사실 북미 비핵화 협상 이후 북한 기득권층과 주민들 사이에는 핵 포기에 대해 우려와 불안, 회의론이 큰 데다 김 위원장의 실제 의지인지 여부를 믿을 수 없어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이 지난 13일 재외동포의 이름을 빌려 주민들에게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의 당위성을 이례적으로 조목조목 상세히 설명하며 설득에 나선 것도 이런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신문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차를 묶은 매듭을 칼로 내려쳐 끊었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복잡한 문제를 단번에 풀어내는 묘수를 의미)에 비유하는가 하면,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개척자·선구자"가 되려는 것이 김 위원장의 "드팀 없는 신념"이라고 역설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 해제가 없다며 북한의 '선(先)핵폐기'만 고집한다면, 김 위원장의 결단은 힘을 잃고 지도력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결국 단계적·동시적 행동을 통해 신뢰를 쌓고 주고받기로 이득을 챙겨야만 마음을 놓고 핵 포기 결단의 보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