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극우 논란에 멍드는 한국당
자유한국당이 ‘극우화(化)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발단은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폄훼’ 발언이다. 이 의원에 대한 제명 조치에도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2·27 전당대회’로 불씨가 옮겨붙는 모양새다.

지난 18일 대구에서 열린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는 자중지란에 빠진 한국당의 현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후보 연설 전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려고 단상에 오르자 객석에서 “빨갱이” “내려와” 같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한 김 위원장을 향해 김 의원의 지지자 모임 격인 ‘태극기 부대’ 수백 명이 쏟아낸 불만의 표시였다.

이날 태극기 부대만 원색적인 막말을 퍼부은 게 아니었다. 세 번째 연설자로 나선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서슴없이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인가. 주사파 문재인 정권을 탄핵시키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멸망해 김정은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연실색한 게 기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당이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해 2017년 3월 서울에서 연 ‘후보자 비전 대회’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때도 객석의 절반을 점령한 태극기 부대는 인명진 당시 비대위원장이 연단에 서자 욕설과 막말을 쏟아냈다.

일부 지지세력의 극우적 행태가 되풀이되고 전대가 혼탁한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30%대 진입을 넘보던 한국당 지지율은 20%대 중반으로 고꾸라졌다.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과 60대 이상 연령층에서도 지지율이 빠져나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비대위나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극단적이지만 맹목적이기도 한 지지집단을 놓쳐선 안 된다는 판단이 한몫했을 것이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도 “중도의 민심을 파고들기는커녕 한쪽 이념으로 치우친 정당으로 각인되면 내년 총선 승리는 물론 2022년 정권 탈환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발언마저 하길 꺼렸다. 제1 야당인 한국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