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는데도 여야가 쌀 목표가격을 역대 최고가로 올리기로 잠정 합의해 쌀 과잉생산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충남 공주의 한 단위농협에서 추곡 수매를 하는 모습.  /한경DB
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는데도 여야가 쌀 목표가격을 역대 최고가로 올리기로 잠정 합의해 쌀 과잉생산을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충남 공주의 한 단위농협에서 추곡 수매를 하는 모습. /한경DB
정부가 쌀 공급 과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쌀 목표가격을 역대 최고 수준인 ‘21만원 이상’(80㎏ 기준)으로 올리기로 잠정 합의했다. 쌀 목표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이면 시세가 낮아도 차액을 보전받기 때문에 농가로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가 깨져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긴다. 목표가격과 시세 차이만큼 정부가 농가에 보전해주는 직불금 예산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런 구조를 알고 있는 여야가 쌀 목표가격을 역대 최대폭(11.7%) 올리기로 한 것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농민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최고 인상률

쌀 공급 넘치는데, 정치권 '목표가격 사상 최대폭 인상' 동의…부담은 국민 몫
정부는 2005년 쌀 수매제도를 폐지하면서 목표가격과 함께 변동직불제도를 도입했다. 2005~2007년산 쌀에 적용한 첫 목표가격은 17만83원이었다. 2008년 목표가격 결정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며 2008~2012년산 쌀 목표가격은 동결했다. 2013~2017년산 쌀 목표가격은 10.5% 인상된 18만8000원이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3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간사가 합의한 대로 2018~2022년산 쌀 목표가격이 21만원 이상으로 결정되면 인상률은 11.7%로 역대 최대폭이 된다.

변동직불금 부담도 늘어난다. 변동직불금은 쌀값이 목표가격보다 낮으면 차액의 85%를 정부가 농가에 보전해주는 것이다. 올해 변동직불금 관련 예산은 2533억원이다. 쌀값이 19만3000원이라고 가정하면 목표가격이 21만7000원으로 정해질 경우 예산이 전액 소진된다. 목표가격이 각당 원내대표 협의에서 21만7000원보다 높아지면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예산이 모자라면 예비비 등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쌀 과잉 생산 부추길 듯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쌀 목표가격 21만원 달성’을 농정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7년 대선 공약집에는 액수는 제시되지 않았고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쌀 목표가격을 인상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유세 기간에 농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쌀 목표가격이 21만원 이상 돼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농민단체들은 “목표가격 21만원은 문 대통령 공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정이 지난해 11월 목표가격을 19만6000원으로 책정했다가 “공약 파기”라는 농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산 이유다. 민주당이 야당을 설득해 목표가격을 애초보다 1만4000원 이상 올리기로 한 건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목표가격 인상은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쌀값이 역대 최고로 뛴 데다 정부가 직불금까지 주기 때문에 농민들은 벼농사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2년 처음으로 70㎏ 밑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61㎏까지 쪼그라들었다. 이 기간 쌀 소비량은 14.4% 줄었지만 쌀 생산량은 3.3%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농가 소득을 늘린다며 2017년 9월부터 공공비축미를 대량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하는 방식으로 쌀값을 인위적으로 올렸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안팎에 그치고 있지만 외식물가 상승률은 쌀값 인상의 영향 등으로 지난달까지 9개월째 3%대다. 여기에 쌀 목표가격마저 인상되면 국민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란 지적이 있다. 농가에 지급하는 직불금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