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주한 미국대사의 아쉬운 소통 행보
“유감(regret)입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20일 예정됐던 해리 해리스 대사의 기자간담회를 취소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내놓은 답변이다. 외교부 전체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였지만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다. 미국대사관 대변인은 “취소가 아니라 연기다. (이유는)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만 했다. 취소 통보도 간담회 전날인 19일 한밤중 이뤄졌다. 대사관 측은 외교부 기자단의 항의에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해리스 대사의 기자간담회 취소는 벌써 두 번째다. 미국대사관은 지난 13일 간담회를 예정했다가 불과 닷새를 앞두고 돌연 취소했다. 당시에도 뚜렷한 사유조차 밝히지 않았다. “미·북 대화를 앞두고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해리스 대사의 이번 간담회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쏠린 상황이었다. 미·북 비핵화 협상 내용이 안갯속에 가려진 만큼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 토씨 하나에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대사관 측이 두 차례 연이어 간담회를 취소한 것과 관련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22일께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미·북 간 최종 실무협상을 의식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민감한 협상 국면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 국무부로부터 연기하라는 지침을 받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 간담회가 미·북 정상회담 개최 일정이 확정된 이후인 11일 미국의 요청으로 잡혔다는 점에서 대사관 측 태도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대사관의 이 같은 일방적 태도에 불쾌했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부임한 뒤 8월 처음 이뤄진 언론간담회 때가 떠올랐다. 대사관은 당시 6개 언론사만 초청했다. 나머지 언론사는 ‘눈 뜨고 코 베인’ 격이었다.

해리스 대사는 전임자 못지않게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함께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주재국 국민을 대표하는 한국 언론과의 ‘약속’을 거듭 일방적으로 깨면서 소통 측면에서 아쉽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해리스 대사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