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사는 60대 후반 A씨는 은퇴 후 아내와 둘이 지내고 있다. A씨의 30대 후반 딸과 아들은 모두 분가했다. 딸은 의사, 아들은 중견기업 직원이다. 두 사람 모두 미혼의 1인 가구다. 최근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A씨의 딸과 아들은 각자 집에 공기청정기와 건조기를 렌털했다. 딸은 너무 바빠 세탁소에 갈 시간이 없다며 의류청정기도 들여놨다. 자녀들은 A씨 집에도 공기청정기와 건조기를 주문해줬다. 이 세 가정은 이미 정수기와 비데를 렌털해 쓰고 있었다. 한 달에 생활가전 렌털료만 10만~16만원 정도 든다. 환경오염, 건강에 대한 관심, 직접 찾아와 관리해준다는 편리함 등의 이유로 생활가전을 빌려 쓰는 A씨와 같은 가정이 늘고 있다.

렌털업체 일제히 사상 최대 매출

지난해 초만 해도 국내 렌털시장 경쟁이 치열해져 출혈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SK매직 LG전자 현대렌탈케어 등 대기업 계열 렌털업체가 시장이 뛰어들고, 웅진그룹도 렌털사업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우려에 그쳤다. 국내 렌털업체는 지난해 일제히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국내 1위 생활가전 렌털업체 코웨이는 지난해 매출 2조7073억원, 영업이익 519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7.6%, 10.0% 증가했다. 코웨이는 매년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SK매직 청호나이스 교원 현대렌탈의 매출도 사상 최대였다. SK매직의 지난해 매출은 6438억원으로 전년 대비 23.0% 늘었다.

미세먼지로 공기청정기 수요 늘어

웅진렌탈 정수기
웅진렌탈 정수기
렌털시장이 매년 커지는 것은 미세먼지 등의 영향으로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 ‘환경 가전제품’이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수기 보급률이 아직 60% 미만인 데다 공기청정기 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어 렌털업체의 실적 신기록 행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대렌탈케어 관계자는 “렌털업계에 1월과 2월은 추운 날씨와 설 등이 겹쳐 비수기인데 올해는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연초부터 미세먼지 저감 비상조치 발령이 이어지는 등 중국발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공기청정기를 추가로 들여놓는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식 변화도 매출 증가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렌털업계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낮았던 과거엔 집 자동차 가전제품 등 내 것을 가지려는 소유욕이 컸지만 지금은 빌려 쓰는 게 상식인 시대가 됐다”며 “이런 인식 변화가 렌털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이라고 말했다.

렌털 품목 확대…해외 진출도

코웨이 사계절 의류청정기
코웨이 사계절 의류청정기
렌털업체는 매트리스 안마의자 건조기 의류관리기 커피머신 등으로 렌털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코웨이 매트리스 렌털 판매량은 사상 최대였다. 전년 대비 15.2% 증가한 14만6000개였다. 코웨이는 “지난해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 기존 제품은 물론 의류청정기 등 새로운 제품의 렌털 계정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청호나이스는 지난해 에어컨 렌털사업에 나섰다. 관리 서비스를 더한 패키지 상품으로 기존 대기업 판매 제품과 차별화했다.

렌털업체들은 또 B2B(기업 간 거래)와 B2G(정부기관 거래)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가정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학교 경로당 은행 등에서 정수기 공기청정기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어린이집 학교 경로당 등에 공기청정기 렌털료를 지원해준다. SK매직 관계자는 “사무실 학교 병원 등 신설 건물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시장도 열리고 있다. 코웨이 청호나이스 쿠쿠홈시스 등은 한류 바람이 부는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 중이다. 지난해 코웨이의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32.5% 증가한 5442억원을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와 미국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말레이시아 매출은 전년 대비 70.3% 증가한 3534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연간 기준 처음으로 3000억원을 돌파했다. 미국에선 전년 대비 23.8% 증가한 80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코웨이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시장 확대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