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명의신탁에 가담한 명의수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도 정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명의신탁 금지와 소유권 박탈은 구별돼야 합니다."
부동산실명법을 어긴 채 다른 사람의 명의로 등기한 부동산 소유권을 원 소유자(명의신탁자)와 등기명의인(명의수탁자) 중 누구에게 인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벌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부동산 명의신탁 사건 두 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고 명의신탁된 부동산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귀속시킬지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대법원이 이날 공개변론을 연 것은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2년 9월 "부동산실명법에 따라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이 무효가 되므로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은 명의신탁자에게 귀속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을 어긴 채 타인 명의로 땅을 맡겼어도 원 소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판례를 유지해야 할지, 바꿔야 할지를 두고 이날 변론에서는 첨예한 공방이 오갔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는 "부동산투기는 반사회적 행위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는데도 대법원 판례는 부동산 명의신탁을 형사법 위반이라고 보면서도 명의신탁자의 재산을 인정해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탈법수단으로 악용되는 부동산 명의신탁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면 제출로 의견을 대신한 대한변호사협회도 "명의신탁은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로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며 "적어도 부동산 투기나 탈법 수단으로 이뤄진 명의신탁의 경우에는 명의신탁자가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판례대로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면 부동산실명법을 어긴 행위인 부동산 명의신탁이 근절될 수 없고, 오히려 조장을 한다는 취지다.
법무부에 따르면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건수는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듬해인 1996년 59건에서 2006년 1천477건으로 급증했고, 이후에는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박탈하면 불법행위에 함께 가담한 명의수탁자에게만 유리한 꼴이 된다는 반대 의견도 많았다.
박동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의신탁된 부동산의 소유권을 수탁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정의관념에 부합한다는 주장에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불법한 원인에 개입한 수탁자에게 소유권을 귀속시키는 결론은 인내할 수 있는 도덕적 위험 범위를 초과한다"는 논리를 폈다.
부동산실명법을 만든 취지가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박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의 실 소유자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송오식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동산실명법이 명의신탁자의 등기회복을 위한 권리행사를 금지하지는 않는다"며 "명의신탁 금지규정은 정책적 판단으로, 명의신탁약정 그 자체는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변론에서 제기된 각계의 의견을 토대로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 이르면 5월께 부동산명의신탁에 대한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변경할지를 결정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