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프로메테우스적인 '혁신'과 시시포스의 '고통'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회적 기업가
사회적 기업가들은 ‘소셜 비즈니스’를 통해 취약계층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장에서는 원활히 공급되지 못하는, 그렇다고 정부가 감당하기에도 비효율적인 사회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민영화된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 기업을 ‘제4부문(제4섹터)’의 핵심 주체로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시장부문의 불완전성, 정부부문의 비효율성, 비영리부문의 비수익성을 ‘기업’의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다.

‘사회(인간) 공헌형 혁신’이다. 사회적 기업가의 창업(전환) 동기야 저마다 다르지만, 기부가 아니라 생산(판매) 활동에 근거하고 이윤만이 아니라, 사회공헌을 핵심 목표로 경영하는 사회적 기업의 방식은 사회적기업육성법 도입 10여 년 만에 괄목한 성과를 냈다.

적어도 현장에서 목격하는 사회적 기업가와 기업의 경영활동 결과가 이를 잘 증명해준다. 경북 사회적 기업의 경우 전체 근로자의 59%가 취약계층(2018년 기준)이다. 사회적 기업가들은 연간 10만 명이 넘는 지역 주민에게 무상 또는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한편, 소외 지역의 공동체 활성화와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의 성과를 내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 필자는 그들을 인간에게 불(혁신적 기업운영)을 가져다준 죄로 제우스로부터 모진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고 싶다.

신화 속 주인공이 그렇듯이 이 훌륭한 기업가들도 자신의 성과와는 상반된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수익성보다는 공익성을 전제로 공급돼야 할 ‘사회적 금융’이 충분치 않아 자비 혹은 대출로 사업을 영위한다. 이자 압박은 경영심리를 위축시킨다.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를 다수 채용하기 때문에 경영과 실무에 대한 부담도 일반 기업보다 크다. 수익성은 시장 평균을 웃돌기 어렵지만 일반 기업과 거의 동등하게 경쟁해야 한다. 윤리경영에 대한 의지와 의무는 영업 외 비용을 증가시킨다. 기업가에 대한 인센티브는 극히 제한적이며, 혁신의 대가로 ‘심리적 보람’ 이상을 바라기 어렵다. 때론 이마저 없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어려움들이 프로메테우스를 쪼는 독수리의 부리와 다를 바 있을까.

사회적 기업가가 갖는 공통적 속성은 ‘기업 존속 의무와 성장의 의지’다. 본인이 느끼는 고통과 무관하게 가족과 다름없는 구성원들을 위한 책임감,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의무감, 이것은 그들을 신화의 한 주인공처럼 보이게 한다.

일반 중소기업과 똑같이 법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수익 창출 활동을 하며, 고용을 통해 임금을 지급하고, 사회보험에 가입하며, 부가가치세 법인세 취득·등록·면허세 등 조세에 대한 모든 의무를 지지만 중소기업이 누리는 혜택과 지원에서는 자주 배제된다. 비영리법인 근로자 역시 일반 중소기업 근로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도 ‘내일채움공제’ 등과 같은 근로자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조합원과 종사자 전원이 여성일지라도 협동조합과 비영리법인은 ‘여성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법인은 자금대출에서도 일반 법인에 비해 지나치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 은행 대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들이 (지방)정부로부터 수주하는 경상보조사업의 제한적 예산 사용은 더 효율적인 투자와 경영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예산 사용의 경직성은 ‘돈을 가져다 놓고도 필요한 곳에 못 쓰는’ 아이러니를 만들기도 한다. ‘기업의 목적은 영리(이윤) 창출’이라는 고정관념이 오히려 반기업정서를 부추기고, 영리기업만 기업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다양한 형태의 기업 출현을 제한하는 규제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기업 등 소셜 비즈니스 조직 육성의 근간이 돼야 하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제정은 늘 논의만 무성한 느낌이다. 수년째 논쟁만 반복되고 있다. 해마다 많은 사회적기업가와 현장 전문가들이 문제점과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있지만, 밀어 올리면 다시 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바위’일 뿐이다. 기업가들의 혁신과 헌신, 사회적 기업의 성과에 걸맞은 제도 변화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