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다키스트 아워' 반전시킨 처칠의 신념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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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이 곧 '영국의 힘'이었던 처칠
품격 있는 언어가 리더의 덕목 중 하나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 퍼스트룩 대표 >
품격 있는 언어가 리더의 덕목 중 하나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 퍼스트룩 대표 >
올해도 어김없이 아카데미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는 어떤 영화, 어떤 배우가 ‘오스카’란 애칭의 아카데미상을 받을지 세계 영화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개인적으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수상 이후 밝혀지는 흥미진진한 인생 역전 스토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번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등장할지 내심 기대 중이다. 시즌을 기념해 작년 9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배우 게리 올드먼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를 소개한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5월, 영국이 덩케르크 작전으로 알려진 다이나모 작전을 결정하기까지 긴박했던 며칠간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으로 사용된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에서 가져온 것으로, 당시 영국이 놓인 절체절명의 상황을 암시한다.
그만큼 처칠을 총리로 앉힌 당시 영국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유럽을 침공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군은 순식간에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프랑스 북부 해안까지 밀어붙인 끝에 영국군과 연합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영국에선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운 전시(戰時) 내각이 구성된다. 그 누구도 패배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하던 시기에 의회는 비주류 아웃사이더 정치인이었던 처칠에게 총리 자리를 넘긴다.
영국과 덩케르크 해안의 거리는 불과 42㎞. 조국의 도움을 기다리는 30만 명 넘는 군인을 사지에서 구해야만 했던 그때, 영국 전시 내각은 서로 다른 의견으로 으르렁댔다. 패배가 불 보듯 뻔하니 평화협상을 통해 영국의 안전을 보장받자는 의견이 팽배했던 것이다. 영국 국왕 조지 6세도 영국의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던 그때, 처칠은 오로지 말의 힘으로 국민과 의회를 설득한다.
“우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We shall never surrender).”
처칠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이 시기 남긴다. 정치적 공세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리더는 말의 힘으로 역사의 향방을 바꿨다. 말로써 불안에 떠는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줬고, 사기가 떨어진 군인들에게 싸울 힘을 줬다. 그의 말이 곧 영국의 힘이 된 것이다. 그는 말과 연설이 주는 힘과 영향력을 알고 싸운 진정한 리더였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덩케르크 작전 이전과 직후, 세 번에 걸친 명연설을 통해 처칠이란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엔 신념만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그릇인 말 또한 포함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영화다.
주위를 둘러보면 빈말과 막말이 난무한다. 리더가 되겠다는 정치인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을 넘어선 막말을 듣다 보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영화에서도 다루지만 처칠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품격있는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고 신념을 설파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정도의 문장가이기도 한 처칠은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말이 ‘다키스트 아워’를 소개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기도 하다.
전기영화지만 재미있다. ‘다키스트 아워’와 ‘덩케르크’ ‘킹스 스피치’까지 연달아 보면 당시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5월, 영국이 덩케르크 작전으로 알려진 다이나모 작전을 결정하기까지 긴박했던 며칠간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으로 사용된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에서 가져온 것으로, 당시 영국이 놓인 절체절명의 상황을 암시한다.
그만큼 처칠을 총리로 앉힌 당시 영국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유럽을 침공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군은 순식간에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프랑스 북부 해안까지 밀어붙인 끝에 영국군과 연합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영국에선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운 전시(戰時) 내각이 구성된다. 그 누구도 패배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하던 시기에 의회는 비주류 아웃사이더 정치인이었던 처칠에게 총리 자리를 넘긴다.
영국과 덩케르크 해안의 거리는 불과 42㎞. 조국의 도움을 기다리는 30만 명 넘는 군인을 사지에서 구해야만 했던 그때, 영국 전시 내각은 서로 다른 의견으로 으르렁댔다. 패배가 불 보듯 뻔하니 평화협상을 통해 영국의 안전을 보장받자는 의견이 팽배했던 것이다. 영국 국왕 조지 6세도 영국의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던 그때, 처칠은 오로지 말의 힘으로 국민과 의회를 설득한다.
“우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We shall never surrender).”
처칠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이 시기 남긴다. 정치적 공세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리더는 말의 힘으로 역사의 향방을 바꿨다. 말로써 불안에 떠는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줬고, 사기가 떨어진 군인들에게 싸울 힘을 줬다. 그의 말이 곧 영국의 힘이 된 것이다. 그는 말과 연설이 주는 힘과 영향력을 알고 싸운 진정한 리더였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덩케르크 작전 이전과 직후, 세 번에 걸친 명연설을 통해 처칠이란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엔 신념만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그릇인 말 또한 포함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영화다.
주위를 둘러보면 빈말과 막말이 난무한다. 리더가 되겠다는 정치인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을 넘어선 막말을 듣다 보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영화에서도 다루지만 처칠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품격있는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고 신념을 설파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정도의 문장가이기도 한 처칠은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 말이 ‘다키스트 아워’를 소개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기도 하다.
전기영화지만 재미있다. ‘다키스트 아워’와 ‘덩케르크’ ‘킹스 스피치’까지 연달아 보면 당시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