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심우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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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고두현의 문화살롱] 심우장 가는 길](https://img.hankyung.com/photo/201902/07.14250991.1.jpg)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59㎡(17.8평) 규모의 소박한 단층집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서재 앞에 ‘尋牛莊(심우장)’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불교 수행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 깨달음의 과정을 의미한다.
북향 언덕의 '소를 찾는 집'
만해는 이 집에서 11년을 살았다. 방 안에 그의 원고와 글씨 등이 보관돼 있다. 3·1운동으로 투옥됐을 때의옥중공판기록도 눈에 띈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신문사를 그만둔 이씨가 이곳 동장(洞長)을 지내며 심우장을 자주 찾았다. 만해는 그와 늦게까지 얘기하며 오래 교류했다.
만해가 심우장에서 심혈을 기울인것은 독립정신과 민족의식 고취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1934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비롯해 《후회》 《박명》 등을 이곳에서 썼다. 수많은 논설과 수필, 번역문도 집필했다. 그는 필명으로 ‘목부(牧夫)’ ‘실우(失牛)’ 등을 썼다. 목부는 ‘소를 키운다’는 뜻이고, 실우는 ‘소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이는 곧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 구도 과정과 맞닿아 있다.
독립운동 외 남긴 것도 조명을
그는 총상 후유증으로 머리를 흔드는 ‘체머리’를 앓으면서도 인문학적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단재 신채호 유고집 간행을 추진하던 중,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생을 마감했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심우장이 사적으로 지정되고 관련 행사가 많이 열린다. 이와 함께 그의 구도자적 삶을 재조명하는 학문적 접근도 더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심우장 벽에 걸린 만해 시 ‘심우장 1’의 뜻이 새삼 의미심장하다. ‘잃은 소 없건만/ 찾을 소 우습도다./ 만일 잃을 시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