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수소 경제와 정권 리스크
‘우연’ ‘불확실성’ ‘위험’ 등에 ‘옵션’과 ‘분산’으로 대응하는 건 금융만이 아니다. 진화의 속도와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과학기술 분야도 다를 게 없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 누구나 ‘선택과 집중’을 하겠지만, 그 전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수소 경제 장기 로드맵’을 내놨다. 현재 시점에서 수소연료전기차를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나오는 건 이상할 것도 없다. 장기 프로젝트로 간다는 건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소연료전기차를 넘어 산업생태계 차원으로, 국가마다 자동차를 전략산업으로 삼고 있는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게임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수소 경제’라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준비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경제계와 과학기술계가 걱정하는 건 따로 있다. 2040년까지의 로드맵이면 대통령 얼굴이 몇 번은 바뀔 텐데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선 ‘기술 리스크’, ‘경제 리스크’, ‘사회 리스크’보다 더 무서운 리스크가 더해졌다. ‘정권 리스크’다. 앞 정권이 벌인 일은 죄다 부정하는 정치적 장면이 반복된 결과로 생겨난 일종의 학습효과다. 정권 리스크를 이대로 두고선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길이 없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정부는 모든 기술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원칙이다. 정부가 이 원칙만 준수해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혁신을 이끄는 국가일수록 기술 경쟁을 장려하고 투자 환경을 조성한다. 우리처럼 앞 정권이 지원했다는 이유로, 검증도 안 된 편견으로 특정 기술을 배제하기 시작하면 남아날 기술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을 하듯이 다음 정부가 ‘탈수소’를 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런 식이면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파괴적 창조’가 되고 만다.

장기 프로젝트의 기획과 추진, 평가를 전문가 집단에 일임하고 정부는 지원만 하는 방법도 있다. 독일처럼 공학한림원 등 전문단체를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도 함부로 뒤집을 수 없는 거버넌스를 만들면 더욱 좋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관료들이 ‘R&D(연구개발) 권력’을 내놔야 한다. 정부 주도가 온몸에 밴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그럴 수 있을까? 관료주의는 그래서 무섭다.

정치 바람을 타는 정부 R&D 예산 대신 기업 R&D 투자를 확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노무현 정부가 수소 경제를 들고나온 적이 있지만, 현대자동차가 수소연료전기차 R&D를 해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수소 경제 로드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업 R&D 투자에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준다면 정부가 하겠다는 산업생태계, 클러스터 등의 조성도 상당 부분 기업 주도로 갈 수 있다. 불행히도 기업 R&D 세제혜택을 ‘특혜’로 보는 이 나라 정치인들의 인식 수준이 걸림돌이다.

또 하나의 선택지는 정치적 타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 산업·기술정책을 평가하면서 너무 자주 바뀐다며 ‘정책 과잉’을 지적한 바 있다. 정권마다 5년 안에 모든 걸 다 해치우려고 정책을 쏟아내지만 정작 새로운 성장동력은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다. 여·야 어느 쪽이 다음 정권을 잡든 적어도 과학기술 정책, 혁신성장 정책에 대해선 당파를 초월한다는 약속이 절실하지만, 이런 혜안을 가진 정치인들이 없다.

정치와 정부의 내재적인 문제로 장기 프로젝트 추진이 어렵다는 건 곧 ‘국가전략의 부재’를 말한다. 혁신성장을 하겠다는 국가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