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EU] '인터넷의 아버지'도 우려…EU의 새 저작권법을 둘러싼 논란
상업적인 목적이 없더라도 마음대로 콘텐츠를 재배포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유럽연합(EU)의 저작권법이 도입 초읽기에 들어섰습니다.

EU 28개국 대부분이 법안을 지지하면서 유럽의회, 유럽이사회, EU집행위원회까지 사실상 모든 협의 과정을 통과한 것인데요.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비상에 걸렸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콘텐츠 대부분이 사용자끼리 공유하는 글과 이미지, 영상 등으로 이뤄진 소셜미디어는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유럽에서 뉴스 서비스 철수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
[아! EU] '인터넷의 아버지'도 우려…EU의 새 저작권법을 둘러싼 논란
지난해 이 법안 초안이 공개되자 1973년 인터넷 통신규약 설계자인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과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를 포함한 70여 명의 IT 리더들은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위협”이라며 공개서한(사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반면 출판·언론업계에선 작가와 예술가, 언론인 등에 대한 보상이 강화될 것이라며 개정안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법안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EU의 새 저작권법에서 가장 거센 반발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은 ‘각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글과 음원, 이미지, 코드 등은 저작권 인식 기술(업로드 필터)을 통해 검열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13항입니다. 상업 용도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저작권이 걸린 콘텐츠를 사용하거나 재배포하는 걸 사실상 금지한 것이죠.

이 조항에 따르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 업체는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가 무단으로 유통되는 것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다만 설립 3년 미만이거나 매출 1000만유로(127억원) 미만 소규모 업체는 예외로 인정되죠. 위키피디아 같은 비영리 온라인 백과사전은 연구·교육 목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할 경우 규제를 적용받지 않습니다.

테크리더들은 이 조항에 대해 “콘텐츠 제작자에게 적절한 보상은 당연히 주어져야 하지만 과도한 규제는 정보의 공유와 혁신을 막는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넷 상에 공유되는 패러디 이미지나 리믹스 등 사용자 제작 콘텐츠는 아예 종말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콘텐츠의 자유로운 공유를 옹호하는 EU해적당도 “업로드 필터가 합법적인 패러디와 저작권 침해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공유할 수 있는 깃허브 등 플랫폼도 생존이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법의 의도와 달리 정치적 검열이나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죠.

무엇보다 저작권 검열 시스템을 갖추는 데 고가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업계에선 당장 큰 문제로 보고 있는데요.

소규모 업체에 한해선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중견기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미 자체 저작권 검열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사용중인 유튜브의 경우 이를 개발하고 수정하는 데 11년간 6000만달러(67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뉴스 콘텐츠를 노출하면 해당 제작사(언론사)에 비용을 지급하도록 하는 일명 ‘링크세(link tax)’를 담은 11항도 논란이 많은 조항입니다.

링크세가 도입되면 뉴스를 제공하고 있는 포털 등 플랫폼은 저작권과 우선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뉴스 전문을 게재하지 않고 이미지나 일부 내용만 미리보기로 띄워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죠.

현재 뉴스를 제공하고 있는 대부분 포털과 앱은 이 법이 시행되면 불법으로 간주된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이용자가 뉴스를 검색했을 때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만 보여주면(아웃링크 방식) 언론사에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럽의회에선 이 법안이 오는 3~4월 최종 표결에 부쳐져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독일 네덜란드 등 상당수 EU 회원국은 작년 법안 상정 당시에는 반대했으나 논의가 진전되면서 지금은 대부분 찬성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핀란드와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폴란드 등 국가는 지난주 이 합의안에 서명을 거부했다고 하네요.

개정안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새로운 규정이 혁신을 방해하고 디지털 시장에서 유럽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저작권 보유자에 대한 보호와 EU 시민, 기업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다”고 표명했습니다.

다만 IT 전문매체 더버지 등은 5월 23~26일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가 법안 통과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