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김금화 선생 별세…무형문화재 배연신굿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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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82호인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의 보유자인 만신(여자 무당) 김금화 선생이 23일 별세했다.
김 선생은 이날 오전 5시 57분께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때 무병을 앓다가 17세에 외할머니이자 만신인 김천일씨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나라굿과 대동굿을 혼자 주재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19세에 독립했다.
1950년 6·25전쟁 때 월남한 김 선생은 무속인 방수덕씨와 인천과 경기도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1965년에 서울로 활동지를 옮겼다.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해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받으며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어장의 풍어를 기원하는 '서해안 풍어제'가 유명하다.
김 선생은 1982년에는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녹스빌국제박람회장에서 열린 친선공연에서 '철무리굿'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백두산 천지와 독일 베를린 등지에서 대동굿과 진혼굿 등을 공연하며 국내·외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인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2005년 인천 강화도에 무속시설인 '금화당'을 열고 후학 양성과 무속문화 전수에 힘썼다.
2014년에는 일생을 담은 영화 '만신'이 개봉돼 무속문화가 화제에 되기도 했다.
빈소는 인천시 동구 청기와장례식장 204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6시 40분이고 장지는 인천 부평승화원이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김 선생은 이날 오전 5시 57분께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때 무병을 앓다가 17세에 외할머니이자 만신인 김천일씨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나라굿과 대동굿을 혼자 주재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19세에 독립했다.
1950년 6·25전쟁 때 월남한 김 선생은 무속인 방수덕씨와 인천과 경기도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1965년에 서울로 활동지를 옮겼다.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해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받으며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어장의 풍어를 기원하는 '서해안 풍어제'가 유명하다.
김 선생은 1982년에는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녹스빌국제박람회장에서 열린 친선공연에서 '철무리굿'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백두산 천지와 독일 베를린 등지에서 대동굿과 진혼굿 등을 공연하며 국내·외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인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2005년 인천 강화도에 무속시설인 '금화당'을 열고 후학 양성과 무속문화 전수에 힘썼다.
2014년에는 일생을 담은 영화 '만신'이 개봉돼 무속문화가 화제에 되기도 했다.
빈소는 인천시 동구 청기와장례식장 204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6시 40분이고 장지는 인천 부평승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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