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피폭에 정부 무관심…원폭 피해자들 못다 푼 한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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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자협회 합천지부 피해자 전수 조사주도…예산 탓 한계
2·3세 피해자 지원 요구 16년째 정부 꿈쩍도 안 해…"특별법 개정해야" "(강제동원된) 갱내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30분 휴식하는 것 외에는 계속 노역해야 했다.
외곽 경비는 한국인 노역자 도주 방지를 위해 일본인이 섰다."
"한국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자 굶는 일이 허다해 1943년쯤 아내 등 가족 4명을 일본으로 오게 했다.
그러다가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손·발톱이 변형되고 피부가 갈라지고 망막이 흐려지고 머리 통증 등 증상을 겪었다.
뒤에 태어난 자녀도 눈 통증, 치아 변형 등을 호소하고 있다."
합천 출신 원폭 피해자 1세인 손모(98)씨가 아들을 통해 지난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로 보내온 '피폭자 증언서' 일부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우리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이 피폭에 이어 평생의 후유증까지 떠안은 한 많은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지만 올해 3·1 운동 100주년 등으로 일제 치하 과거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데 반해 원폭 피해자들은 정부 무관심 속에 잊혀 가고 있다.
24일 경남 합천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심진태 지부장은 "더 늦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1세대뿐만 아니라 2·3세 피해자에 대해서도 실태조사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합천지부는 1945년 8월 6일·9일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피폭된 국내 생존자 2천200여명을 대상으로 증언을 수집하는 일에 2016년부터 매진해왔다.
증언 수집은 올해로 3년째 진행됐지만, 현재까지 증언에 참여한 인원은 대상자의 13%인 300여명에 불과하다.
민간단체가 주도해 예산·인력 등이 부족한 탓에 우편을 통해 증언을 독려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서다.
여기에다 혼자서는 제대로 증언을 기록하기조차 힘든 고령의 피해자들이 많고, 피폭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 증언 수집이 쉽지 않다.
합천지부는 수집한 자료들을 전산화해 보관할 예정이다.
영남대 문화인류학과·역사학과 석사 과정 학생 등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심 지부장은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으로 왜 갔고, 일본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피폭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본인과 자녀 건강은 어떤지 등에 대한 증언을 기록해두는 일이 하루빨리 마무리돼야 하지만 정부는 느리기만 해 합천지부에서 먼저 증언 확보에 나선 것"이라며 속을 태웠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생존 원폭 피해자 1세는 2천261명이며, 이 가운데 70∼80대가 가장 많다.
76∼80세가 975명, 81∼85세가 535명이다.
피해자들이 고령인 만큼 원폭 피해자에 대한 실태조사가 시급한데도 정부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
2017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후 정부는 피해 실태조사를 위한 원폭피해자지원위원회를 꾸렸지만, 회의는 여태껏 두 번만 열렸다.
일부 원폭 피해자를 대상으로 건강·생활실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전수 조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실태조사에 배정된 예산은 지난해와 올해 합쳐 2억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원폭 피해자 1세 실태조사마저 예산 부족 등 한계에 부딪히면서 2·3세 피해자에 대한 지원, 평화공원 조성 같은 기념사업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2003년 고(故) 김형률씨가 원폭 피해자 2세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사실을 고백한 지 16년이 흘렀지만 2·3세 피해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지원은 전무하다.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후손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실태조사 등을 이행하도록 한 원폭 피해자 특별법 개정안이 지난해 제출됐지만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 있다는 원망이 원폭 피해자 관련 단체들로부터 터져 나온다.
심 지부장은 "원폭 피해자들은 피폭 이후 70년 넘는 세월을 교과서에도 제대로 실리지 못한 채 소외·방치돼 왔다"며 "국가가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올해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특별법 개정에도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세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2·3세 피해자 등에 대한 부분은 법이 개정된 뒤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피폭된 한국인은 각각 7만·3만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모두 5만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한국인 피해자의 70∼80%가 합천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도 불린다.
내륙에 위치한 합천은 일제강점기 당시 농지가 적고 기근이 끊이지 않은 데다 일제 수탈과 강제징용까지 겹치며 많은 주민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2·3세 피해자 지원 요구 16년째 정부 꿈쩍도 안 해…"특별법 개정해야" "(강제동원된) 갱내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30분 휴식하는 것 외에는 계속 노역해야 했다.
외곽 경비는 한국인 노역자 도주 방지를 위해 일본인이 섰다."
"한국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자 굶는 일이 허다해 1943년쯤 아내 등 가족 4명을 일본으로 오게 했다.
그러다가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손·발톱이 변형되고 피부가 갈라지고 망막이 흐려지고 머리 통증 등 증상을 겪었다.
뒤에 태어난 자녀도 눈 통증, 치아 변형 등을 호소하고 있다."
합천 출신 원폭 피해자 1세인 손모(98)씨가 아들을 통해 지난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로 보내온 '피폭자 증언서' 일부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우리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이 피폭에 이어 평생의 후유증까지 떠안은 한 많은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지만 올해 3·1 운동 100주년 등으로 일제 치하 과거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데 반해 원폭 피해자들은 정부 무관심 속에 잊혀 가고 있다.
24일 경남 합천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심진태 지부장은 "더 늦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1세대뿐만 아니라 2·3세 피해자에 대해서도 실태조사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합천지부는 1945년 8월 6일·9일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피폭된 국내 생존자 2천200여명을 대상으로 증언을 수집하는 일에 2016년부터 매진해왔다.
증언 수집은 올해로 3년째 진행됐지만, 현재까지 증언에 참여한 인원은 대상자의 13%인 300여명에 불과하다.
민간단체가 주도해 예산·인력 등이 부족한 탓에 우편을 통해 증언을 독려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서다.
여기에다 혼자서는 제대로 증언을 기록하기조차 힘든 고령의 피해자들이 많고, 피폭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 증언 수집이 쉽지 않다.
합천지부는 수집한 자료들을 전산화해 보관할 예정이다.
영남대 문화인류학과·역사학과 석사 과정 학생 등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심 지부장은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으로 왜 갔고, 일본에서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피폭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본인과 자녀 건강은 어떤지 등에 대한 증언을 기록해두는 일이 하루빨리 마무리돼야 하지만 정부는 느리기만 해 합천지부에서 먼저 증언 확보에 나선 것"이라며 속을 태웠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생존 원폭 피해자 1세는 2천261명이며, 이 가운데 70∼80대가 가장 많다.
76∼80세가 975명, 81∼85세가 535명이다.
피해자들이 고령인 만큼 원폭 피해자에 대한 실태조사가 시급한데도 정부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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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 후 정부는 피해 실태조사를 위한 원폭피해자지원위원회를 꾸렸지만, 회의는 여태껏 두 번만 열렸다.
일부 원폭 피해자를 대상으로 건강·생활실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전수 조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실태조사에 배정된 예산은 지난해와 올해 합쳐 2억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원폭 피해자 1세 실태조사마저 예산 부족 등 한계에 부딪히면서 2·3세 피해자에 대한 지원, 평화공원 조성 같은 기념사업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2003년 고(故) 김형률씨가 원폭 피해자 2세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사실을 고백한 지 16년이 흘렀지만 2·3세 피해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지원은 전무하다. 1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후손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실태조사 등을 이행하도록 한 원폭 피해자 특별법 개정안이 지난해 제출됐지만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 있다는 원망이 원폭 피해자 관련 단체들로부터 터져 나온다.
심 지부장은 "원폭 피해자들은 피폭 이후 70년 넘는 세월을 교과서에도 제대로 실리지 못한 채 소외·방치돼 왔다"며 "국가가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올해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특별법 개정에도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세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2·3세 피해자 등에 대한 부분은 법이 개정된 뒤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피폭된 한국인은 각각 7만·3만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모두 5만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한국인 피해자의 70∼80%가 합천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도 불린다.
내륙에 위치한 합천은 일제강점기 당시 농지가 적고 기근이 끊이지 않은 데다 일제 수탈과 강제징용까지 겹치며 많은 주민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