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재벌 개혁, 법과 시장에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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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이 함께하는 재벌은 우리 사회 한 부분
功過를 평가해 공존 위한 '대타협안' 만들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경제 향해 전진해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금융투자협회장 >
功過를 평가해 공존 위한 '대타협안' 만들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장경제 향해 전진해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금융투자협회장 >
우리 국민은 재벌에 애증 복합심리를 갖고 있다. 삼성은 든든한데 이씨 일가는 싫어한다. 대한항공은 괜찮은데 조씨 일가는 미워한다. 기업을 일군 공(功)과 그 과정에서 저지른 과(過)를 비교해 과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한때는 우리 사회가 재벌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 적도 있다. 큰 죄를 지어도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을 감안해’ 너그러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재벌과 재벌 일가는 남보다 훨씬 더 엄격한 법적, 도덕적 시험을 통과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국민의 시각이 바뀐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재벌 일가의 내부지분율이 불가피하게 하락하면서 남의 돈으로 자기 것인 양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소위 ‘황제경영’의 부당함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기업의 안정적 경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경영권’이란 것이 음습한 내부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방어막 역할을 해왔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경영권 보호에 대한 모든 주장이 힘을 잃게 됐다.
또 다른 이유는 국민이 과거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에게 가졌던 존경심을 재벌 2세, 3세들에게는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방 전후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으킨 1세대 창업주들을 많은 국민은 감사의 눈으로 바라봤고, 이런 기업들의 성장 과정에서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근본적인 기대나 신뢰 관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재벌의 소유권이 대물림되면서 증여·상속과 승계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 편법과 치부가 하나둘씩 드러나자 기업승계의 정통성에 대해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워졌다.
또한 이제는 재벌체제 밖에도 돈과 인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자본 축적이 부족했던 시절, 재벌 밖에는 돈과 인재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 없었다. 정부 또한 국가 대표 수출기업을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한정된 재원을 은행을 통해 재벌회사들에 집중 공급함으로써 재벌의 폭발적 성장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견기업에서 훌륭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검증된 경영자층이 두텁고, 자금 또한 사업성만 좋으면 투자하겠다는 기관과 펀드가 줄을 서 있다. 요즘 재벌 기업이나 대기업이 내놓는 기업 매물의 상당수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가 인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벌 바깥에서 커오고 있는 대체세력의 존재를 웅변한다.
최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재벌 문제에 대해 “이씨·정씨 집안이 삼성과 현대에서 쫓겨나면 국민이 하루 즐겁지만 쫓겨나는 형태가 글로벌 금융자본에 먹히는 것이라면 국민이 20년 고생하게 된다”고 하면서 ‘대타협’의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 있는 진보논객들이 ‘허수아비론’ ‘식민지 근대화론’에 이를 빗대면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얼마나 미우면 재벌들은 ‘대타협’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할까.
재벌은 한국 경제의 근대화 과정에서 자라난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다. 잘한 일도 있고 잘하지 못한 일도 있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국민의 인식이 바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재벌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재벌과 우리 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대타협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재벌을 쪼개서 작은 회사로 만들면 저절로 경영이 투명해지고, 재벌 일가를 회사에서 쫓아내면 전문경영인이 들어와 경영을 더 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대리인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고, 재벌 가족의 일원이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아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률과 시장에 맡겨야 한다. 재벌 개혁 입법에 매달릴 시간에 배임·횡령·조세포탈에 대한 양형만 강화하더라도 재벌가의 일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배구조 또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바꿔 나가면 될 일이다.
재벌들도 새로운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의 재벌 압박이 좌파 정부의 횡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지배구조와 투명경영의 모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성숙한 시장경제를 향해 한 걸음 더 진화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재벌과 재벌 일가는 남보다 훨씬 더 엄격한 법적, 도덕적 시험을 통과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국민의 시각이 바뀐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선,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재벌 일가의 내부지분율이 불가피하게 하락하면서 남의 돈으로 자기 것인 양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소위 ‘황제경영’의 부당함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기업의 안정적 경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경영권’이란 것이 음습한 내부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방어막 역할을 해왔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경영권 보호에 대한 모든 주장이 힘을 잃게 됐다.
또 다른 이유는 국민이 과거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에게 가졌던 존경심을 재벌 2세, 3세들에게는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방 전후 맨주먹으로 기업을 일으킨 1세대 창업주들을 많은 국민은 감사의 눈으로 바라봤고, 이런 기업들의 성장 과정에서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근본적인 기대나 신뢰 관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재벌의 소유권이 대물림되면서 증여·상속과 승계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 편법과 치부가 하나둘씩 드러나자 기업승계의 정통성에 대해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워졌다.
또한 이제는 재벌체제 밖에도 돈과 인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자본 축적이 부족했던 시절, 재벌 밖에는 돈과 인재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 없었다. 정부 또한 국가 대표 수출기업을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한정된 재원을 은행을 통해 재벌회사들에 집중 공급함으로써 재벌의 폭발적 성장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견기업에서 훌륭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검증된 경영자층이 두텁고, 자금 또한 사업성만 좋으면 투자하겠다는 기관과 펀드가 줄을 서 있다. 요즘 재벌 기업이나 대기업이 내놓는 기업 매물의 상당수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가 인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벌 바깥에서 커오고 있는 대체세력의 존재를 웅변한다.
최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재벌 문제에 대해 “이씨·정씨 집안이 삼성과 현대에서 쫓겨나면 국민이 하루 즐겁지만 쫓겨나는 형태가 글로벌 금융자본에 먹히는 것이라면 국민이 20년 고생하게 된다”고 하면서 ‘대타협’의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 있는 진보논객들이 ‘허수아비론’ ‘식민지 근대화론’에 이를 빗대면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얼마나 미우면 재벌들은 ‘대타협’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고 할까.
재벌은 한국 경제의 근대화 과정에서 자라난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다. 잘한 일도 있고 잘하지 못한 일도 있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국민의 인식이 바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재벌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재벌과 우리 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대타협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재벌을 쪼개서 작은 회사로 만들면 저절로 경영이 투명해지고, 재벌 일가를 회사에서 쫓아내면 전문경영인이 들어와 경영을 더 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대리인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고, 재벌 가족의 일원이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아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률과 시장에 맡겨야 한다. 재벌 개혁 입법에 매달릴 시간에 배임·횡령·조세포탈에 대한 양형만 강화하더라도 재벌가의 일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배구조 또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바꿔 나가면 될 일이다.
재벌들도 새로운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의 재벌 압박이 좌파 정부의 횡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지배구조와 투명경영의 모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성숙한 시장경제를 향해 한 걸음 더 진화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