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도 함께 하자"…커피 산업에 부는 공유경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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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포틀랜드·시드니·도쿄까지 '공유 로스터리' 상륙
커피시장 키우는 공유 로스터리
값비싼 로스팅 기기 공동 사용
커피시장 키우는 공유 로스터리
값비싼 로스팅 기기 공동 사용
이달 3일 호주 시드니 근교 알렉산드리아 맥어보이가(街)에 있는 ‘컬렉티브 로스팅 솔루션(CRS)’. 대형 창고처럼 생긴 건물 안에는 커피 볶는 향이 가득했다. 여러 명의 로스터들이 ‘기센W15’ 등 대형 커피 로스팅 기기를 사용해 자신의 원두를 만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20~30대 로스터들이 서로의 로스팅 노트를 공유하며 더 나은 커피 맛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늦은 저녁 각자의 카페에서 일과를 마치고 온 바리스타들이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고, 생두 무역회사와의 직거래 장터가 열리기도 한다.
CRS는 호주 최초의 ‘공유 로스터리’다. 공유 로스터리는 한 공간에 여러 대의 커피 로스팅 기기를 놓고 여러 명이 공유해 사용하는 곳이다. 예비 창업자도 있고, 오랜 경력의 바리스타도 있다. 이들은 단순히 기계만 공유하지 않는다. 생두의 공동 구매를 통해 바잉 파워를 키우고, 카페 창업 이전에 여러 실험을 해보며 리스크를 줄인다. 2015년 문을 연 후 3년 만에 회원사가 30개로 늘었다.
글로벌 커피산업에서 공유 로스터리가 확산하고 있다. 2012년 뉴욕 브루클린의 ‘풀리 컬렉티브’를 시작으로 포틀랜드, 캘리포니아, 시드니, 멜버른, 도쿄까지 번졌다. 독립적이고 폐쇄적이던 커피 로스팅업계에 ‘공유경제’가 더해지며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향후 5년간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스페셜티 커피 시장 규모는 466억달러(약 52조3551억원)였다. 왜 공유 로스터리인가
수십 년간 커피 시장은 대형 로스터리가 장악해왔다. 로스팅 방식은 기밀에 부쳐졌다. 스타벅스 원두의 로스팅 프로필은 시애틀 본사에도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을 정도다. 커피 시장이 고급 생두와 개성 있는 로스팅 기법에 주목하는 스페셜티 커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전 세계 바리스타들은 로스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갈증을 가장 먼저 푼 건 뉴욕에서다. 세계 최초의 공유 로스터리인 뉴욕 ‘풀리 컬렉티브’는 유명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에서 교육센터를 운영하던 스티브 미어리시가 창업했다.
공유 로스터리가 주목하는 건 카페 창업과 운영의 두 가지 문제 해결이다. 첫 번째는 비용이다. 기센, 프로밧 등 유명 로스팅 기기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제조된다. 그 가격도 최소 수천만원에 이른다. 이 로스팅 기기를 들여놓을 공간 임대료와 세금 등을 포함하면 초기 창업 비용만 수억원이 든다.
두 번째는 생두 공급이다. 좋은 커피의 기본은 좋은 품질의 생두다. 개인이 이 생두를 경매 등을 통해 구입하려면 비싼 가격을 지급해야 하고, 좋은 생두를 구하더라도 홀로 로스팅을 하다 보면 품질 관리가 어렵다. 공유 로스터리는 비용과 생두 공급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시드니 CRS의 창업자 나와르 아드라는 “커피 로스팅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고, 단지 개성이 존재할 뿐”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여기 모인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고 공유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커피 대학’ 겸 ‘인큐베이터’ 역할
뉴욕에서 시작된 공유 로스터리는 구매력과 경쟁력이 동시에 검증되면서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뉴욕에는 풀리컬렉티브 외에도 ‘시티오브세인츠’가 등장했다. 미국 서부 포틀랜드에는 ‘벅맨커피팩토리’와 ‘아스팩트 커피컬렉티브’ 등이 설립됐다. 성공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뉴욕의 ‘9th 스트리트 에스프레소’와 ‘JOE’등 대형 브랜드가 풀리컬렉티브를 거쳐 탄생했다. 멜버른에는 ‘패트리시아’ 등 카페가 ‘뷰로컬렉티브’라는 공유 로스터리에서 자체 원두를 생산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도쿄의 고서점가가 밀집한 짐보초의 글리치커피로스터는 2015년 스즈키 기요카즈가 설립해 커피 로스팅의 새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는 로스팅 기기를 빌려주는 사업은 있지만 본격적인 의미의 공유 로스터리는 아직 없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로스팅 역사가 1980년대 시작돼 오랜 전통을 갖고 있지만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데다, 개인 카페마다 (로스팅을 잘 모른 채) 기기를 먼저 들여놓는 경향이 있었다”며 “카페 창업이나 원두 비즈니스를 원하는 젊은 바리스타가 늘면서 공유 로스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유 로스터리 회원들은 경쟁하되 협력한다. 멜버른의 공유 로스터리에서는 정기적으로 ‘북유럽 커피를 알아보는 날’ ‘인도네시아 커피를 탐구하는 날’ 등의 이벤트를 연다. 포틀랜드의 벅맨커피팩토리는 지역 주민들의 커피 사랑방 역할을 한다. 집에서 만드는 ‘홈브루잉’ 강의를 열고, 시음회도 한다.
시드니·멜버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CRS는 호주 최초의 ‘공유 로스터리’다. 공유 로스터리는 한 공간에 여러 대의 커피 로스팅 기기를 놓고 여러 명이 공유해 사용하는 곳이다. 예비 창업자도 있고, 오랜 경력의 바리스타도 있다. 이들은 단순히 기계만 공유하지 않는다. 생두의 공동 구매를 통해 바잉 파워를 키우고, 카페 창업 이전에 여러 실험을 해보며 리스크를 줄인다. 2015년 문을 연 후 3년 만에 회원사가 30개로 늘었다.
글로벌 커피산업에서 공유 로스터리가 확산하고 있다. 2012년 뉴욕 브루클린의 ‘풀리 컬렉티브’를 시작으로 포틀랜드, 캘리포니아, 시드니, 멜버른, 도쿄까지 번졌다. 독립적이고 폐쇄적이던 커피 로스팅업계에 ‘공유경제’가 더해지며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향후 5년간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스페셜티 커피 시장 규모는 466억달러(약 52조3551억원)였다. 왜 공유 로스터리인가
수십 년간 커피 시장은 대형 로스터리가 장악해왔다. 로스팅 방식은 기밀에 부쳐졌다. 스타벅스 원두의 로스팅 프로필은 시애틀 본사에도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을 정도다. 커피 시장이 고급 생두와 개성 있는 로스팅 기법에 주목하는 스페셜티 커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전 세계 바리스타들은 로스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갈증을 가장 먼저 푼 건 뉴욕에서다. 세계 최초의 공유 로스터리인 뉴욕 ‘풀리 컬렉티브’는 유명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에서 교육센터를 운영하던 스티브 미어리시가 창업했다.
공유 로스터리가 주목하는 건 카페 창업과 운영의 두 가지 문제 해결이다. 첫 번째는 비용이다. 기센, 프로밧 등 유명 로스팅 기기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제조된다. 그 가격도 최소 수천만원에 이른다. 이 로스팅 기기를 들여놓을 공간 임대료와 세금 등을 포함하면 초기 창업 비용만 수억원이 든다.
두 번째는 생두 공급이다. 좋은 커피의 기본은 좋은 품질의 생두다. 개인이 이 생두를 경매 등을 통해 구입하려면 비싼 가격을 지급해야 하고, 좋은 생두를 구하더라도 홀로 로스팅을 하다 보면 품질 관리가 어렵다. 공유 로스터리는 비용과 생두 공급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시드니 CRS의 창업자 나와르 아드라는 “커피 로스팅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고, 단지 개성이 존재할 뿐”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여기 모인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고 공유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커피 대학’ 겸 ‘인큐베이터’ 역할
뉴욕에서 시작된 공유 로스터리는 구매력과 경쟁력이 동시에 검증되면서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뉴욕에는 풀리컬렉티브 외에도 ‘시티오브세인츠’가 등장했다. 미국 서부 포틀랜드에는 ‘벅맨커피팩토리’와 ‘아스팩트 커피컬렉티브’ 등이 설립됐다. 성공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뉴욕의 ‘9th 스트리트 에스프레소’와 ‘JOE’등 대형 브랜드가 풀리컬렉티브를 거쳐 탄생했다. 멜버른에는 ‘패트리시아’ 등 카페가 ‘뷰로컬렉티브’라는 공유 로스터리에서 자체 원두를 생산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도쿄의 고서점가가 밀집한 짐보초의 글리치커피로스터는 2015년 스즈키 기요카즈가 설립해 커피 로스팅의 새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는 로스팅 기기를 빌려주는 사업은 있지만 본격적인 의미의 공유 로스터리는 아직 없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로스팅 역사가 1980년대 시작돼 오랜 전통을 갖고 있지만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데다, 개인 카페마다 (로스팅을 잘 모른 채) 기기를 먼저 들여놓는 경향이 있었다”며 “카페 창업이나 원두 비즈니스를 원하는 젊은 바리스타가 늘면서 공유 로스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유 로스터리 회원들은 경쟁하되 협력한다. 멜버른의 공유 로스터리에서는 정기적으로 ‘북유럽 커피를 알아보는 날’ ‘인도네시아 커피를 탐구하는 날’ 등의 이벤트를 연다. 포틀랜드의 벅맨커피팩토리는 지역 주민들의 커피 사랑방 역할을 한다. 집에서 만드는 ‘홈브루잉’ 강의를 열고, 시음회도 한다.
시드니·멜버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