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일본 마이너스 집값 속출…철거비 얹어줘야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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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극화' 진행되는 日부동산 가격
빈집 확산에 '소유=손해'인 집도
빈집 확산에 '소유=손해'인 집도
최근 몇년 새 일본에서 단독주택이 0엔 또는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출현하고 있다. 일부 소유주는 우리 돈 500만원이 넘는 돈을 얹어주고 매각에 나섰다. 관리비용·세금 등을 고려하면 부동산을 보유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판단에서다.
◆땅 140평 낀 단독주택이 0엔
25일 일본 부동산 관련 웹사이트 ‘이나카노세가츠(田舎の生活)’에 따르면 지난해 히로시마 현(広島県) 마하라 시(三原市)에 있는 한 단독주택은 0엔에 거래됐다. 약 460㎡ 토지에 80㎡ 규모로 들어선 1층 단독주택이다. 거실 하나, 방 3개, 화장실 한 개 등을 갖췄다. 이 주택이 있는 사기시마(佐木島)는 마하라 항구에서 배를 타야 닿는 도서 지역이다. 이 거래에는 매매비용과 내부 수리비는 매수인이 부담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비슷한 시기 아키타 현(秋田県) 다이센 시(大仙市) 외곽에 있는 한 주택도 0엔에 거래됐다. 정리 비용 50만엔을 매도자가 매수자에게 건네는 조건으로 거래가 성사됐다.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된 셈이다. 1974년에 준공한 이 주택은 방 5개 거실 1개에 창고로 활용할 수 있는 별채까지 갖췄다. 효고 현(兵庫県) 시소시(宍粟市)에 있는 한 단독주택도 0엔 양도됐다. 메이지 시대인 1887년에 준공해 2017년 초까지 임대됐으나 그 이후로는 임차인을 들이지 못했다.
일본의 빈집(아키야·空き家)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0원에 팔리거나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추가 비용까지 제공하며 매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3년 일본 주택 6063만여 가구 중 13.5%(약 820만 호) 정도가 버려진 채로 방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가고시마(鹿児島県), 코치(高知), 오카야마(和歌山) 등에선 전체 주택 중 10%가 빈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5년 단위로 빈집 통계를 조사하고 있어, 2013년이 가장 최신 자료다. 일본의 빈집가구는 2017년 들어 1000만 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는 2030년대 초 전체 가구 중 30%가 빈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나카노세가츠(田舎の生活)’에 따르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나온 매물도 많다. 이들 집 역시 지방의 외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매물로 나와 있지만 팔리는 물건은 제한적이라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쓸모가 없어서다. 아주 외딴 곳에선 마을 전체가 통으로 비어 있다. ◆철거비 줘야 팔려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0원 또는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되는 집은 주로 지방의 외딴곳이나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1950~1980년대)에는 집이 모자라 산 중턱에까지 집을 지었다. 이런 곳엔 길이 좁아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오르막이 심해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어렵다. 집은 지은 지 40년 이상 돼 낡았다. 아무 쓸모가 없는 집이 된 것이다.
집값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철거비용과 거래세 때문이다. 집값은 0원이지만 철거비용은 수백만원씩 들기 예사다. 취득할 때 내야 하는 세금도 수백만원대다. 돈을 더 얹어줘야 집이 팔리는 이유다. 일본언론에 따르면 이런 집은 지방자치단체가 사가지도 않는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무료로 지자체에 넘기려는 이들이 가끔 있지만 지자체가 거부한다.
오사카 소재 부동산전문기업 세이요통상의 쿠리모토 타다시 대표는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도 외곽으로 한 시간 정도 나가면 지은 지 30~40년 이상 된 노후 단독주택들이 마을 단위로 비어 있다”며 “무상양도를 하려 해도 취득세, 리노베이션 비용 등의 문제가 있어 가치가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전했다.
그나마 집이 팔리면 다행이다. 주인도 모른 채 방치된 집도 많다. 부모가 죽었지만 자식이 상속해가지 않아 주인도 모르는 빈집이 되는 것이다.
◆지자체 ‘빈집은행’ 운영
일본 지역 사회는 빈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은 경관을 헤칠 뿐만 아니라 화재, 붕괴 위험 등에 노출되는 까닭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주변 집들까지 피해를 본다. 빈집이 늘어나는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빈집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아키야뱅크(空き家バンク)’를 운영 중이다. 빈집 정보를 웹사이트에 게재해 매수, 매도를 도와주는 서비스다. 빈집으로 등록된 주택의 가격은 우리 돈 100만원 선에서부터 2억원대까지 다양하다. 무상주택도 있으나 대부분 노후도가 심각해 수십만엔의 수리비를 투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곰팡이가 슬 거나 흰개미가 들끓는 등 주거 여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며 “일부 주택은 압류된 것일 수 있어 우리보다 보수적인 일본인들이 잘 찾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 투자자들은 빈집 투자에 나섰다. 빈집을 헐값에 산 뒤 리모델링해 되파는 시도다. 그러나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그나마 활기가 있는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이런 식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극심한 차별화 진행
인구감소 시대를 맞은 일본이지만 모든 부동산 가격이 내리는 건 아니다. 일본 부동산 평균 가격은 최근 들어 오르는 추세다. 지난해 일본의 전국 평균 공시지가는 0.7% 상승하며 3년 연속 올랐다. 상업지 가격이 1.9% 상승하며 주택지 상승률(0.3%)을 앞질렀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권 상업지의 가격 상승률은 3.9%에 달했다. 스키리조트로 유명한 홋카이도의 니세코(ニセコ) 지구는 상업지와 주택지 모두 30% 이상 급등하면서 일본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국내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오키나와 나하(那覇) 시의 주택지 가격도 20%가량 급등했다.
현지 언론은 방일 관광객 수가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했다. 일본관광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방일 외국인 관광객 수는 2869만 명이다. 2011년(622만 명)에 비해 4.6배가량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에서 쓴 돈은 4조4162억엔으로 같은 기간 5배 이상 늘었다. 쿠리모토 타다시 대표는 “도심회귀 현상, 외국인 관광객 급증 등의 영향으로 대도시와 관광지 지가는 급등하고 있는 반면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과 대도시 외곽 베드타운은 몰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땅 140평 낀 단독주택이 0엔
25일 일본 부동산 관련 웹사이트 ‘이나카노세가츠(田舎の生活)’에 따르면 지난해 히로시마 현(広島県) 마하라 시(三原市)에 있는 한 단독주택은 0엔에 거래됐다. 약 460㎡ 토지에 80㎡ 규모로 들어선 1층 단독주택이다. 거실 하나, 방 3개, 화장실 한 개 등을 갖췄다. 이 주택이 있는 사기시마(佐木島)는 마하라 항구에서 배를 타야 닿는 도서 지역이다. 이 거래에는 매매비용과 내부 수리비는 매수인이 부담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비슷한 시기 아키타 현(秋田県) 다이센 시(大仙市) 외곽에 있는 한 주택도 0엔에 거래됐다. 정리 비용 50만엔을 매도자가 매수자에게 건네는 조건으로 거래가 성사됐다.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된 셈이다. 1974년에 준공한 이 주택은 방 5개 거실 1개에 창고로 활용할 수 있는 별채까지 갖췄다. 효고 현(兵庫県) 시소시(宍粟市)에 있는 한 단독주택도 0엔 양도됐다. 메이지 시대인 1887년에 준공해 2017년 초까지 임대됐으나 그 이후로는 임차인을 들이지 못했다.
일본의 빈집(아키야·空き家)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0원에 팔리거나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추가 비용까지 제공하며 매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3년 일본 주택 6063만여 가구 중 13.5%(약 820만 호) 정도가 버려진 채로 방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가고시마(鹿児島県), 코치(高知), 오카야마(和歌山) 등에선 전체 주택 중 10%가 빈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5년 단위로 빈집 통계를 조사하고 있어, 2013년이 가장 최신 자료다. 일본의 빈집가구는 2017년 들어 1000만 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는 2030년대 초 전체 가구 중 30%가 빈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나카노세가츠(田舎の生活)’에 따르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나온 매물도 많다. 이들 집 역시 지방의 외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매물로 나와 있지만 팔리는 물건은 제한적이라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쓸모가 없어서다. 아주 외딴 곳에선 마을 전체가 통으로 비어 있다. ◆철거비 줘야 팔려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0원 또는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되는 집은 주로 지방의 외딴곳이나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1950~1980년대)에는 집이 모자라 산 중턱에까지 집을 지었다. 이런 곳엔 길이 좁아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오르막이 심해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어렵다. 집은 지은 지 40년 이상 돼 낡았다. 아무 쓸모가 없는 집이 된 것이다.
집값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철거비용과 거래세 때문이다. 집값은 0원이지만 철거비용은 수백만원씩 들기 예사다. 취득할 때 내야 하는 세금도 수백만원대다. 돈을 더 얹어줘야 집이 팔리는 이유다. 일본언론에 따르면 이런 집은 지방자치단체가 사가지도 않는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무료로 지자체에 넘기려는 이들이 가끔 있지만 지자체가 거부한다.
오사카 소재 부동산전문기업 세이요통상의 쿠리모토 타다시 대표는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도 외곽으로 한 시간 정도 나가면 지은 지 30~40년 이상 된 노후 단독주택들이 마을 단위로 비어 있다”며 “무상양도를 하려 해도 취득세, 리노베이션 비용 등의 문제가 있어 가치가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전했다.
그나마 집이 팔리면 다행이다. 주인도 모른 채 방치된 집도 많다. 부모가 죽었지만 자식이 상속해가지 않아 주인도 모르는 빈집이 되는 것이다.
◆지자체 ‘빈집은행’ 운영
일본 지역 사회는 빈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은 경관을 헤칠 뿐만 아니라 화재, 붕괴 위험 등에 노출되는 까닭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주변 집들까지 피해를 본다. 빈집이 늘어나는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빈집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아키야뱅크(空き家バンク)’를 운영 중이다. 빈집 정보를 웹사이트에 게재해 매수, 매도를 도와주는 서비스다. 빈집으로 등록된 주택의 가격은 우리 돈 100만원 선에서부터 2억원대까지 다양하다. 무상주택도 있으나 대부분 노후도가 심각해 수십만엔의 수리비를 투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곰팡이가 슬 거나 흰개미가 들끓는 등 주거 여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며 “일부 주택은 압류된 것일 수 있어 우리보다 보수적인 일본인들이 잘 찾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 투자자들은 빈집 투자에 나섰다. 빈집을 헐값에 산 뒤 리모델링해 되파는 시도다. 그러나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그나마 활기가 있는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이런 식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극심한 차별화 진행
인구감소 시대를 맞은 일본이지만 모든 부동산 가격이 내리는 건 아니다. 일본 부동산 평균 가격은 최근 들어 오르는 추세다. 지난해 일본의 전국 평균 공시지가는 0.7% 상승하며 3년 연속 올랐다. 상업지 가격이 1.9% 상승하며 주택지 상승률(0.3%)을 앞질렀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3대 도시권 상업지의 가격 상승률은 3.9%에 달했다. 스키리조트로 유명한 홋카이도의 니세코(ニセコ) 지구는 상업지와 주택지 모두 30% 이상 급등하면서 일본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국내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오키나와 나하(那覇) 시의 주택지 가격도 20%가량 급등했다.
현지 언론은 방일 관광객 수가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했다. 일본관광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방일 외국인 관광객 수는 2869만 명이다. 2011년(622만 명)에 비해 4.6배가량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에서 쓴 돈은 4조4162억엔으로 같은 기간 5배 이상 늘었다. 쿠리모토 타다시 대표는 “도심회귀 현상, 외국인 관광객 급증 등의 영향으로 대도시와 관광지 지가는 급등하고 있는 반면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과 대도시 외곽 베드타운은 몰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