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해외 출장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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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3일' 해외출장의 악몽…비행기만 20시간 '공항'장애 오는줄 ㅠㅠ
숙소·맛집 시시콜콜 묻는 상사…'인간 내비' 노릇하느라 스트레스 팍팍
숙소·맛집 시시콜콜 묻는 상사…'인간 내비' 노릇하느라 스트레스 팍팍
![[김과장 & 이대리] 해외 출장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902/AA.19019122.1.jpg)
해외출장을 떠난 김과장 이대리는 두 가지 감정이 오간다고 한다. 처음엔 기대가 앞선다. 해외 산업 현장을 돌아보며 견문을 넓힐 생각에 맘이 들뜬다. 출장지에서 즐기는 관광과 쇼핑도 소소한 기쁨이다. 그러나 기대는 잠시뿐이다. 빠듯한 일정의 ‘무박 3일’ 출장부터 ‘인간 내비게이션’ 노릇을 하며 상사 수행까지 도맡는 경우도 있다. 로망과 현실이 뒤섞인 해외출장. 이를 겪은 김과장 이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오 과장(38)은 고위 임원과 떠난 첫 출장에 골머리를 앓았다. 기대와 달리 출장 준비에 신경 쓸 것이 많아서였다. 처음엔 비서가 따로 있는 데다 임원 나이도 지긋해 출장 일정이 여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취향이 문제였다. 이 임원은 특정 브랜드의 물만 마신다. 초콜릿 쿠키 빵 등 간식도 한 업체 제품을 고집한다. 그가 선호하는 호텔의 층과 향, 침구 종류까지 맞추려다 보니 호텔 예약도 쉽지 않았다. 오 과장은 “물건을 다 챙겼다고 생각했지만 해외에 나가보니 새롭게 찾는 물건이 나타났다”며 “고위 임원과 떠나는 출장이라 기대했는데 막상 가보니 입사 이래 가장 힘든 출장이었다”고 털어놨다.
금융 공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36)은 연초 떠난 홍콩 출장 내내 ‘인간 내비게이션’ 노릇을 했다. 함께 출장을 간 정 부장(42)이 식당부터 거래처 위치까지 시시콜콜 물어봤다. 길을 모르거나 조금이라도 헤매면 “젊은 친구가 이렇게 외국에서 헤매서야 되겠느냐”고 핀잔을 줬다. 밤에는 더 곤욕이었다. 다음 날을 위해 자고 싶은데 상사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홍콩이 처음인 것은 김 과장도 마찬가지였지만 “뭐 좀 알아보라”는 정 부장의 말에 이불 속에서 나와 노트북을 두세 번씩 켜기도 했다.
출장 간 김에…“이것 좀 사다 줘”
수원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김 대리(30)는 최근 중국 베이징에 3박4일 일정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입사 이후 첫 해외 출장이라 맘이 들떴지만 잠시뿐이었다. 동료들로부터 물건 구매 주문이 쏟아진 것. 동기들은 물론 다른 팀 선배들까지 총 5명이 해외 물건을 사다달라고 했다. “진짜 미안한데…”라며 부탁하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다짜고짜 “중국 간다며? 샤오미 목베개 좀 사다 줘라”라고 하는 선배도 있었다. 스타벅스 중국 한정판 액세서리부터 마오타이주, 화웨이 휴대용 무선공유기까지 주문 품목도 다양했다. 김 대리는 “결국 출장 마지막날 하루 쉬는데 쇼핑으로 시간을 다 날렸다”며 “목베개가 품절이라서 못 사갔는데 볼멘소리를 들어서 억울했다”고 했다. 그는 “미리 돈을 주지도 않고 후배라고 부탁하는 선배도 있었는데 ‘최악’이었다”고 말했다.
출장지에서 이룬 ‘덕업일치’
출장 덕에 ‘덕업일치(광적으로 좋아하는 ‘덕질’과 직업의 일치)’를 이룬 경험도 있다. 요식업계에서 일하는 김 과장(46)은 와인 양조장(와이너리)으로 해외출장을 자주 간다. 주요 출장지는 와인이 많이 나는 프랑스, 스페인, 미국 등지다. 짧게는 3일, 길게는 1주일 다녀온다. 출장을 가면 평소 접하기 힘든 값비싸고 진귀한 와인을 많이 마신다. 와이너리가 수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김 과장에게 좋은 와인을 마음껏 시음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