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간이식 수술을 받은 찰스 칼슨 씨(가운데)가 회복 후 송기원 교수(오른쪽) 등 의료진의 축하를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생체 간이식 수술을 받은 찰스 칼슨 씨(가운데)가 회복 후 송기원 교수(오른쪽) 등 의료진의 축하를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환자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환자와 가족의 치료 의지가 워낙 강했습니다. 저희 의료진을 믿고 치료 과정을 잘 따라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송기원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48)가 이끄는 간이식팀이 미국 스탠퍼드대병원이 치료하지 못한 간경화 환자의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수술은 스탠퍼드대병원 의뢰로 이뤄졌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석좌교수는 “미국 10대 병원으로 손꼽히는 스탠퍼드대병원이 한국 의료 수준을 인정해 환자를 믿고 맡겼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찰스 칼슨 씨(47)는 2011년 간경화와 골수이형성증후군을 진단받았다. 그는 스탠퍼드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10회 이상 받았지만 간 기능이 나빠져 더 이상 치료받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미국 장기이식 네트워크에 뇌사자 간이식 대기자로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긴 대기시간이었다. 차례가 오지 않아 항암치료를 이어가기 힘들었던 탓에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대안은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기증받는 생체 간이식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찾은 대부분 간이식센터에서는 골수이형성증후군 때문에 수술 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그러던 중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관계자가 그에게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송 교수에게 직접 환자를 부탁하는 이메일도 보냈다. 칼슨 씨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아 첫 진료를 받았다. 당시 복수가 많이 차고 수차례의 항암치료로 기력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송 교수는 “어려운 케이스였던 만큼 혈액내과와 협의해 수술 및 수술 후 치료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고 했다.

한 달 뒤 칼슨 씨 부인의 간 일부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이뤄졌다. 송 교수는 “보통 생체 간이식 수술은 10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번 수술은 18시간이 걸렸다”며 “엄청난 양의 수혈이 이뤄지는 등 고도의 집중력과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고 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환자는 이달 중순부터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져 회복 기간을 보냈다. 간 기능이 회복된 칼슨 씨는 다시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25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송 교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부산대 의과대학을 나온 그는 2004년 서울아산병원 전임의가 되면서 생체 간이식 수술에 참여했다. 2011년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가 이끄는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생체 간이식 수술 5000건을 달성했다. 환자와 공여자의 혈액형이 다른 간이식 수술 건수도 세계 최다인 572건이다. 이 병원의 간이식 1년 생존율은 97%, 5년 생존율은 87%로 각각 89%, 70%인 미국보다 높다. 서울아산병원은 2009년부터 간질환 사망률이 높은 몽골과 베트남에 생체 간이식 기술을 전수하는 ‘아산 인 아시아 프로젝트’도 벌이고 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