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등 15개 광역자치단체장들이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입장문을 내고 “5·18에 대한 폄훼나 왜곡은 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5·18 역사왜곡처벌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공동입장문에는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자유한국당 소속인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를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14개 광역단체장들과 무소속 원희룡 제주지사가 이름을 올렸다. 박 시장 등의 공동입장문 발표는 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22일 공동발의한 ‘5·18 왜곡 처벌 특별법안’ 후속조치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 등 3당이 제정을 추진하는 ‘5·18 왜곡 처벌 특별법안’은 5·18 민주화 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여권 정치인들이 난데없이 ‘5·18’에 부산해진 것은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9일 ‘5·18 북한군 개입설’을 거론하는 행사를 열면서 여론을 들쑤셔놓은 이후다. 이 행사에서 ‘북한군’을 운운하는 등 색깔론 구태를 재현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정치권을 과거 논쟁에 빠지게 한 1차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여권 정치인들이 보이고 있는 이후 행태는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부터 민주당 대표, 원내대표에 이어 여당 소속 지자체장들까지 보름 넘도록 돌아가며 ‘5·18 망언’에 포화를 퍼붓는 것은 정치적 계산을 깐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마당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서 있다. 한반도 운명을 가를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내일로 다가왔다. 최악의 고용참사와 경기침체 장기화, 수출 부진 등이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지만 글로벌 무역전쟁 격화 등 대외여건은 악화일로다.

그런데도 정치권 어디를 둘러봐도 위기 극복을 위한 비전 제시는 없고 5·18 등 과거를 규명하고 처벌하자는 주장만 난무한다. 정부와 여당은 일자리 참사 등을 이전 정부 탓으로 돌리며 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문제삼아 국면 전환에 여념이 없다. 27일 새 지도부 선출을 앞둔 한국당은 대안세력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5·18 폄훼 발언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부정 논란 등에 휩싸여 ‘전당대회 효과’를 누리기는커녕 지지율을 까먹고 있다.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과거지향적 정치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 몫으로 돌아오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치권이 ‘과거’ 논쟁에서 벗어나 국가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 과거 탓 아닌, 미래와 희망을 제시해 산적한 경제·안보 난제(難題) 극복에 일조하는 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