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北, 베트남 모델 수용 준비 돼 있나
베트남은 1975년 나라 전체가 공산화된 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국민은 연 수백%까지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마이너스 경제 성장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미국의 제재 강화로 인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심화는 베트남을 더 어렵게 했다.

베트남 공산당 내에서 중앙계획경제시스템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개혁파가 승리해 1986년 ‘도이머이(새롭게 변경한다)’를 선언하면서 개혁·개방을 추진했지만 처음부터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국제적인 제재가 여전했던 데다 개혁·개방을 뒷받침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1995년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제재가 풀리고, 가격자유화 도입, 토지 상속권·담보권·사용권 인정 등 시장경제 요소를 대거 수용하면서 경제 발전의 날개를 달았다.

'모기장식 개방' 투자 유치 실패

북한의 경제 개발 모델로 베트남 방식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을 베트남처럼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김정은이 수행단에 1차 회담 때 없던 경제 참모를 포함한 것도 베트남식 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관건은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수용해 성공적으로 착근(着根)시킬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기치로 한 ‘주체경제노선’이 실패로 돌아가자 1985년 합영법을 제정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나섰다. 노동당이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경직된 공산주의 체제에다 인프라가 열악해 외국 자본 유치는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은 경제특구로 눈을 돌렸다. 1991년 나진·선봉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 16곳을 특구로 지정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중국과 같이 선(線)-면(面)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점(點)에만 머무는 ‘모기장식 개방’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북한 헌법을 보면 공산주의 경제 체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생산수단은 국가가 소유한다”고 못 박고 있다. 베트남이 2001년 헌법 개정을 통해 시장경제 요소 도입에 관한 법적 토대를 마련한 것과 대조된다.

경협, 개혁·개방에 발맞춰야

베트남과 북한은 같은 공산당 1당 체제지만 정권 운영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베트남은 권력이 분산돼 있다. 수뇌부 교체도 가능하다. 반면 북한에선 베트남과 비교할 수 없는 폭압적 1인 철권통치가 행해진다. 이런 독재 체제와 개혁·개방은 양립하기 어렵다.

북한은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꺼려왔다. 섣부른 개혁·개방은 체제 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절대적인 내부 통제와 반대자를 불허하는 ‘왕조식 정권’에는 개방이 위험도 수반한다”고 진단한 대로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북한은 베트남과 달리 외부 정보 차단, 주민 이동 금지 같은 것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개성공단식 단절 모델’ 방식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기반 약화 우려를 무릅쓰고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요소 도입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개방은 해법이 못 된다. 주민의 자유로운 이동이 금지되고, 당의 철저한 통제에 따르는 특구의 실패가 그 증거다. 철 지난 ‘우리 방식의 사회주의 경제’를 고집한다면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은 한낱 꿈에 그칠 것이다. 남북한 경제협력도 북한의 개혁·개방에 발맞춰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협은 자칫 김정은 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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