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단색화 열풍…해외시장서 '불씨' 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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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4년 이끈 단색화…국내외 명암
흔들리는 국내시장…정부 지원 미미·기업들 외면
방긋 웃는 해외시장…이우환, 27일 파리 전시 개막
흔들리는 국내시장…정부 지원 미미·기업들 외면
방긋 웃는 해외시장…이우환, 27일 파리 전시 개막
2015년 시작된 ‘단색화 열풍’이 4년 만에 국내외 시장에서 엇갈린 운명을 맞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매 작품의 일부가 유찰되고 가격도 조정을 받는 등 찬바람을 맞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새로운 한류 바람과 함께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이다.
미술계에 따르면 지난해 ‘단색화 6총사’(김환기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의 경매 낙찰액(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집계)은 총 592억원으로 단색화 인기가 절정을 이룬 2016년(758억원)에 비해 28% 정도 감소했다. 정통 단색화가로 꼽히는 네 명(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의 작년 낙찰액(87억원)도 전년(140억원)에 비해 60% 줄어들었다.
반면 해외 화단에서는 세계적 컬렉터들이 지속적으로 단색화에 관심을 보여 전시회가 줄을 잇고 있다. 한국 단색화는 서양의 단색조 모노크롬과 달리 제작 과정에서 행위의 반복과 물성(物性), 정신의 결합 등을 통해 1970~1980년대 화단을 주름잡은 미술 장르다. 독특한 자연관을 바탕으로 우주적 사고가 깃들어 있는 특성 때문에 미술애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단색화 가격 ‘반 토막’ 수준
국내 미술시장을 이끌던 단색화 열기가 작년 하반기부터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불안한 경제 상황에다 가격 ‘거품’ 논란까지 일면서 조정을 받고 있다는 게 미술계 분석이다. 수작의 경우 80억원대까지 치솟은 김환기 점화는 최근 작품 크기에 따라 15억~40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K옥션의 지난달 경매에는 추정가 20억~30억원대에 나온 김환기 점화가 17억원에 팔려 최근의 가격 하락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10억원을 웃돌던 정상화, 박서보, 이우환의 작품값(100호 기준)도 4억~8억원까지 내려앉았다.
가격이 주춤하면서 단색화 6총사의 지난해 경매 낙찰액(592억원)은 단색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2015년(692억원)보다 15% 줄었다. 지난해 김환기 낙찰액(354억원)은 반추상화 작품이 인기를 끌며 증가했지만 정상화는 24억원에 머물러 2017년(58억원)의 반 토막 수준으로 꺾였다. 박서보도 작년 47억원을 기록해 전년(53억원)보다 6억원 줄었다.
미술계는 미술 한류의 청신호가 켜졌는데도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추상표현주의가 정부와 기업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국제미술시장의 대표 장르가 된 것과는 대조적”이라며 “경제가 크게 둔화될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 제정안(미술유통법), 미술품 개별소비세 부과 등과 같은 규제 정책을 강행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단색화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와 홍보를 도외시한 미술계의 책임도 있다고 꼬집었다. 구삼본 갤러리 포커스 대표는 “국내에서 발간된 단색화 책은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와 영문판 《단색화의 공명》이 유일하다”며 “국내 상업화랑들이 판매 마케팅에만 치중하면서 ‘거품’ 논란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줄잇는 단색화 전시회
해외 미술계의 한국 단색화 조명은 이어지고 있다. 단색화가 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 장르라는 공감대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대만의 유명 화랑 메타피지컬갤러리는 한국 단색화 차세대 대표주자 김태호를 불러내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24일 그의 초대전을 끝낸 메타피지컬은 출품작 20여 점을 팔아 약 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단색화의 위력을 과시한 점도 있지만 그가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메이저 화랑인 블럼앤드포 갤러리는 지난달 12일까지 정상화 작품전을 열어 수많은 컬렉터를 끌어모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포르투니미술관은 오는 5~11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윤형근 회고전을 열어 평생 단색화에 몰두하며 작업한 50여 점을 건다. 베네치아 팔라초카보토미술관은 이강소의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27일부터 9월 30일까지 파리 근교 분관 1호퐁피두메츠에 이우환의 한국적 모노크롬미학을 대대적으로 소개한다. 미국 뉴욕의 메이저 화랑 레비-고비갤러리는 다음달 홍콩지점을 내고 정상화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은 베이징으로 옮겨 전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 미술사에 이미 편입된 만큼 해외 전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외국에서 학술·미학적 인지도가 함께 확보돼야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미술계에 따르면 지난해 ‘단색화 6총사’(김환기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의 경매 낙찰액(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집계)은 총 592억원으로 단색화 인기가 절정을 이룬 2016년(758억원)에 비해 28% 정도 감소했다. 정통 단색화가로 꼽히는 네 명(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의 작년 낙찰액(87억원)도 전년(140억원)에 비해 60% 줄어들었다.
반면 해외 화단에서는 세계적 컬렉터들이 지속적으로 단색화에 관심을 보여 전시회가 줄을 잇고 있다. 한국 단색화는 서양의 단색조 모노크롬과 달리 제작 과정에서 행위의 반복과 물성(物性), 정신의 결합 등을 통해 1970~1980년대 화단을 주름잡은 미술 장르다. 독특한 자연관을 바탕으로 우주적 사고가 깃들어 있는 특성 때문에 미술애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단색화 가격 ‘반 토막’ 수준
국내 미술시장을 이끌던 단색화 열기가 작년 하반기부터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불안한 경제 상황에다 가격 ‘거품’ 논란까지 일면서 조정을 받고 있다는 게 미술계 분석이다. 수작의 경우 80억원대까지 치솟은 김환기 점화는 최근 작품 크기에 따라 15억~40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K옥션의 지난달 경매에는 추정가 20억~30억원대에 나온 김환기 점화가 17억원에 팔려 최근의 가격 하락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10억원을 웃돌던 정상화, 박서보, 이우환의 작품값(100호 기준)도 4억~8억원까지 내려앉았다.
가격이 주춤하면서 단색화 6총사의 지난해 경매 낙찰액(592억원)은 단색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2015년(692억원)보다 15% 줄었다. 지난해 김환기 낙찰액(354억원)은 반추상화 작품이 인기를 끌며 증가했지만 정상화는 24억원에 머물러 2017년(58억원)의 반 토막 수준으로 꺾였다. 박서보도 작년 47억원을 기록해 전년(53억원)보다 6억원 줄었다.
미술계는 미술 한류의 청신호가 켜졌는데도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추상표현주의가 정부와 기업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국제미술시장의 대표 장르가 된 것과는 대조적”이라며 “경제가 크게 둔화될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 제정안(미술유통법), 미술품 개별소비세 부과 등과 같은 규제 정책을 강행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단색화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와 홍보를 도외시한 미술계의 책임도 있다고 꼬집었다. 구삼본 갤러리 포커스 대표는 “국내에서 발간된 단색화 책은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와 영문판 《단색화의 공명》이 유일하다”며 “국내 상업화랑들이 판매 마케팅에만 치중하면서 ‘거품’ 논란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줄잇는 단색화 전시회
해외 미술계의 한국 단색화 조명은 이어지고 있다. 단색화가 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 장르라는 공감대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대만의 유명 화랑 메타피지컬갤러리는 한국 단색화 차세대 대표주자 김태호를 불러내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24일 그의 초대전을 끝낸 메타피지컬은 출품작 20여 점을 팔아 약 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단색화의 위력을 과시한 점도 있지만 그가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메이저 화랑인 블럼앤드포 갤러리는 지난달 12일까지 정상화 작품전을 열어 수많은 컬렉터를 끌어모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포르투니미술관은 오는 5~11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윤형근 회고전을 열어 평생 단색화에 몰두하며 작업한 50여 점을 건다. 베네치아 팔라초카보토미술관은 이강소의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27일부터 9월 30일까지 파리 근교 분관 1호퐁피두메츠에 이우환의 한국적 모노크롬미학을 대대적으로 소개한다. 미국 뉴욕의 메이저 화랑 레비-고비갤러리는 다음달 홍콩지점을 내고 정상화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은 베이징으로 옮겨 전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한국의 단색화가 세계 미술사에 이미 편입된 만큼 해외 전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외국에서 학술·미학적 인지도가 함께 확보돼야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