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대표가 회사의 핵심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석하는 ‘근로자 참관제’가 26일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시작됐다. 수자원공사 등 9개 공기업이 지난달 근로자 참관제를 시범도입한 뒤 세부규정까지 구비해 본격 시행하는 첫 사례다. 이사회 단순 참관이나 배석이 아니라 발언권까지 주어져 공공기관 노조 경영 참가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졌다.

근로자 참관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이 국회 벽에 가로막히자 기획재정부가 찾아낸 우회로다. 국회 경제재정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자 노사합의만으로 가능한 잠정적 대안으로 도입이 결정됐다. 수자원공사 경영진은 당초 서면 의견 제시 방안을 추진했지만, 결국 노조 요구를 수용해 사실상 자유 발언권까지 부여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근로자 참관제로 내부감시와 견제 수준이 높아져 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주주와 투자자들로부터 어떤 의사결정권도 위임받지 못한 노조의 이사회 관여는 상식을 넘는 경영개입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회사 전체 이익보다 직원 이해만을 앞세워 중요한 의사결정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고, 이사회에서 취득한 내밀한 정보가 유출될 위험을 배제하기 어렵다. 노조의 참관으로 이사들의 소신 발언과 투표가 방해받을 개연성도 높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수자원공사 노조는 나름 ‘유연한 노조’로 알려져 있지만, 강성으로 분류되는 한국전력과 산하 발전자회사 등 대형 공기업들이 줄줄이 도입을 예고하고 있어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은행 등 민간기업 노조들의 무리한 ‘노동이사제’ 도입 요구에도 불이 붙을 것이다.

근로자 참관제든, 노동이사제든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공감받지 못한 것은 사회적 동의가 불충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공약을 국민이 승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야당 시절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막은 당사자인 현 정부 인사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최저임금제, 주52시간 근로제 등 ‘친노조’ 정책이 빗발치는 와중에 근로자 참관제까지 가세해 기업할 의욕은 꺾이고 ‘노조할 맛 나는 나라’가 돼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