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접근법을 놓고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 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훨씬 못 미치는 ‘핵동결이나 영변 핵시설 폐기 약속’ 수준의 타협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세계적 핵과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하기 힘든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을 앞세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 완화 등을 근거로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인 대북 전략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 대다수 전문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北의 작은 양보 카드에…트럼프, 더 큰 걸 내줄까 걱정"
“핵실험 중단도 중요 성과”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현지시간) 헤커 선임연구원 등 북핵 전문가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이 김정은을 테이블로 이끌어내 미·북 관계 긴장을 완화시켰다”고 보도했다. 미치광이 전략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게 해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베트남전쟁 당시 핵전쟁 공포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려한 데서 유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초까지 ‘로켓맨 김정은이 자살 임무에 나서고 있다’ ‘내 핵버튼이 더 크고 강력하다’ 등 거친 언사를 쏟아내면서 북한을 압박했다. 그러다 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선 ‘김정은은 매우 훌륭하다’ ‘북한은 경제 로켓이 될 것’이라며 말을 180도 바꿨다.

이와 관련해 헤커 선임연구원과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 등은 “관습을 파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북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직감과 본능에 따라 때로는 일정한 패턴과 규칙에서 벗어난 결정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 대북 협상에서 통했다는 지적이다. 헤커 선임연구원 등은 한때 전쟁 위기까지 거론됐지만, 결국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다고 강조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치광이 전략을 통해 김정은과 ‘서로 좋아하는 관계’라고 공언하는 단계까지 왔다”며 “그는 가끔 여우처럼 행동한다”고 전했다.

“북핵에 근본적인 변화 없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전략이 점차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비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 베트남 회담에서도 비핵화 로드맵이 명확하게 도출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많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서 비핵화 요구 수준을 완화할 의향이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CVID’ 대신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받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재선을 위해 북핵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트럼프의 전략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번 협상에서 핵무기 포기를 강요하지 않고 제재 완화 등 ‘당근’만 주면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인정하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이 조그맣고 점진적인 양보 카드를 내놓을 때 미국은 더 큰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핵 시설에 대한 부분적인 사찰과 노후한 핵실험장 폐기를 협상 카드로 제시하면서 미국에 종전 선언과 경제 제재 해제, 한반도 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달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언급한 비핵화 수위 완화에 대해서도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미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에너지부는 비건 대표가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 행정부 관료들은 반드시 이끌어내야 하는 비핵화 요구를 협상 목록의 하나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백악관 관료들도 “비건 대표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