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교만찬을 하며 이틀간의 ‘핵 담판’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경제 발전을 택한 ‘베트남 모델’을 북한의 미래 청사진으로 부각하며 ‘장외’에서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전날 밤 하노이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신중 모드’였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하노이 도착 트윗’을 날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노이 도착 약 12시간 만인 이날 오전 9시30분 두 건의 트윗을 연달아 올렸다.

하나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베트남처럼 빨리 발전할 것”이란 메시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트윗에서 김정은을 ‘내 친구’라고 부르며 “내 친구 김정은에게는 역사상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기회”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북핵 해법에 비판적인 미국 민주당을 겨냥해 “(전임)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왜 그걸 못했는지 자문해보라”는 트윗이었다. 그는 “내가 북한과 협상하는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라”고도 했다.
< 北대사관 찾은 김정은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지난 26일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직원을 격려한 뒤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北대사관 찾은 김정은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지난 26일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직원을 격려한 뒤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을 향해 핵 포기를 요구하는 동시에 미국 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포석이다. 미국 민주당과 언론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너무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특히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달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단계적 해법’을 사실상 공식화하면서 이런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오전 11시 응우옌푸쫑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북한에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어젯밤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베트남이 얼마나 번영하고 있는지 봤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는 오늘 밤 매우 큰 만찬을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곧바로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와 회담하고 업무 오찬을 함께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핵 담판 직전 베트남 지도자들을 잇따라 만난 건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 펼쳐질 잠재적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베트남 주석, 총리와의 연쇄 회동 후 숙소인 JW메리어트 호텔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5시55분께 다시 숙소를 나섰다. 이번엔 김정은과의 단독 면담, 친교만찬을 위해서였다. 이날 친교만찬은 28일 본격적으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의 ‘서막’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장인 메트로폴 호텔에서 6시30분께 김정은과 인사한 뒤 20분가량 단독회담을 했다. 이어 곧바로 1시간30분가량 ‘3+3’ 형식의 친교만찬이 이어졌다.

미국 측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북핵 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참석했다. 북한 측에선 김정은 외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이 배석했다. 단독회담과 친교만찬에 2시간가량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이날 만남은 28일 본회담을 앞둔 탐색전 성격이 강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담 이후 8개월 만에 재회하는 소회를 나누고 개인적 신뢰를 다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서로 타진하는 말들이 오갔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이날 오후 8시30분께 만찬을 마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 다음날 열릴 정상회담 ‘본게임’을 위한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28일 정상회담도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다. 미국과 베트남 관계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메트로폴 호텔은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이어진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공습을 받은 곳이다. 호텔에는 공습에 대비한 지하벙커 시설이 보존돼 있다. 44년 전 미군의 폭격을 받은 곳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하노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