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타니 수소충전소 시바코엔역점. 충전소 뒤로 도쿄타워가 보인다. 이 충전소 반경 3㎞ 안에 의회의사당과 정부청사도 있다.  /박종관 기자
이와타니 수소충전소 시바코엔역점. 충전소 뒤로 도쿄타워가 보인다. 이 충전소 반경 3㎞ 안에 의회의사당과 정부청사도 있다. /박종관 기자
일본 도쿄 고토구에 있는 에네오스(일본 정유업체)의 수소충전소 시오미코엔점. 입구에 ‘수소(水素)’와 ‘급유(給油)’라는 글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일반 주유기와 수소충전기를 함께 운영하는 복합충전소다. 수소전기차는 하얀색 화살표를, 내연기관차는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 충전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일상처럼 당연해 보였다. 이 충전소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고토 구립(區立) 에다가와초등학교가 있다. 10분가량 걸어가면 시오미 전철역이 나온다. 도쿄에선 수소충전소가 이미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었다.

도쿄 한복판에 들어선 수소충전소

에네오스 수소충전소 시오미코엔점 입구에는 ‘수소(水素)’와 ‘급유(給油)’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에네오스 수소충전소 시오미코엔점 입구에는 ‘수소(水素)’와 ‘급유(給油)’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지난달 27일 도쿄에서 ‘제15회 수소·연료전지 엑스포’가 열렸다. 일본을 비롯한 각국 업체들이 수소전기차와 연료전지 신기술을 경연하는 자리였다. 엑스포 마지막날인 지난 1일 에네오스 수소충전소 시오미코엔점을 찾았다. 도요타의 수소전기차 미라이 한 대가 하얀색 화살표를 따라 들어왔다. 백발의 노인이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는 기요 고지로 씨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휘발유·전기 혼용차) 프리우스를 타다가 3년 전 미라이로 바꿨다. 그는 “도쿄에는 수소전기차를 타고 다니기에 충분할 만큼 충전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수소 충전은 3분 만에 끝났다.

일본 전역에는 113곳의 수소충전소가 있다. 이 중 도쿄에 설치된 충전소는 14곳. 한국(서울 2곳, 지방 12곳)에 있는 전체 충전소의 숫자와 같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내년까지 도쿄 내 수소충전소를 35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도쿄 시내 어디서든 수소충전소까지 1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2025년 320개, 2030년 900개까지 수소충전소를 늘려 기존 주유소를 대체해 나간다는 게 일본 경제산업성의 목표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수소충전소 건립 장소에 제약이 거의 없다. 일왕이 거주하는 궁내청, 대규모 공연장으로 쓰이는 무도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수소충전소가 있다.

이와타니(일본 에너지업체)의 수소충전소 시바코엔역점에서는 일본의 랜드마크인 도쿄타워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충전소의 반경 3㎞ 내에는 의회의사당과 정부청사가 있다. 충전소 관계자는 “초기엔 안전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한 덕분에 지금은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충전소 부지 확보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토지를 빌려주는 등 도심 내 수소충전소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소충전소 관련 입지 규제 혁파

한국에서 일본처럼 도심 한복판에 수소충전소를 세우려면 거미줄 같은 규제와 맞닥뜨린다.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에는 수소충전소 건립이 금지돼 있다. 유치원과 대학 등 학교 부지가 200m 이내에 있어도 안 된다. 철도 시설이 30m 이내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부지를 제공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각종 제약 탓에 충전소를 지을 땅조차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국회에 수소충전소를 짓기로 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규제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면 충전소 사업자가 매번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해 건별로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내년 도쿄올림픽을 ‘수소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몇 년 전부터 수소충전소 관련 규제 혁파에 힘쓰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3만여 개의 주유소에 수소충전기를 함께 설치해 운영할 수 있도록 시설 규제를 완화했다. 주유소에서 최소 10m 이상 떨어진 곳에 수소충전기를 설치하도록 한 소방법도 수정했다. 도로와 수소 충전시설 사이 거리도 기존 ‘8m 이상’에서 벽을 하나 설치하면 5m까지 허용하도록 규제 문턱을 낮췄다.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넘어야 할 산도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와 달리 두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수소 셀프 충전이 금지돼 있다. 한국에선 고압가스안전관리법상 수소충전소에 고용된 직원만 충전할 수 있다. 안전책임관리자도 충전소에 상주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2014년 ‘수소사회 원년’을 선언한 뒤 로드맵에 따라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지난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관련 규제 개혁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일본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도쿄=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